[초대석]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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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의 첫 여성 촌장인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 그는 “지시보다는 대화로 선수촌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근엄한 촌장님보다는 다정한 누나나 언니로 선수들에게 다가가겠다는 얘기다. 앞으로 선수촌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박경모 기자
태릉선수촌의 첫 여성 촌장인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 그는 “지시보다는 대화로 선수촌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근엄한 촌장님보다는 다정한 누나나 언니로 선수들에게 다가가겠다는 얘기다. 앞으로 선수촌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박경모 기자
‘금녀의 벽’을 깨고 태릉선수촌 개촌 4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촌장이 된 이에리사(51) 용인대 교수. 지난달 31일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사흘 전 촌장 내정 인터뷰 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당장 내일부터 선수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애환을 직접 보고 듣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촌장 숙소가 남자 동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

“남자 동에서 못 잘 거야 없지요. 그렇지만 선수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았어요. 운동이 끝난 뒤 샤워를 하거나 쉴 때면 거의 벌거벗고 있을 테니까요. 여자 동 선수 숙소라도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빈 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촌장 숙소를 여자 동으로 옮길 때까지는 당분간 경기 성남시 분당 집에서 출퇴근하기로 했다. 여성 촌장이 처음 탄생하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그는 선수촌에 들어가면서 촌장실부터 바꿨다. 족히 2평은 됨직한 대형 원탁과 걸개그림을 없애라고 한 것. 근엄한 촌장보다는 다정한 누나와 언니로 선수와 직원에게 다가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대화로 모든 걸 풀어 나가려고 해요. 모두가 한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똘똘 뭉치면 성적은 저절로 좋아질 게 아니겠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당장 눈앞에 다가온 내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는 물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이 나올 거라고 자신합니다.”

이 촌장은 선수촌의 살아 있는 역사라 불릴 만큼 초창기부터 ‘태릉 밥’을 먹었다. 10대 스타의 원조 격인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선배 언니들을 모두 꺾고 국내 여자탁구 정상에 올라 1969년 처음 선수촌에 입촌했다. 선수촌이 생긴 게 1966년이니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의 일이었다.

“어려운 시절이었죠. 목욕탕과 화장실은 공용이었어요. 목욕탕은 온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탕의 물을 퍼서 썼는데 야간훈련을 하고 난 뒤에는 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바가지 대신 납작한 세숫대야로 간신히 물을 뜰 수 있을 정도였죠. 라면이 먹고 싶으면 화장실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숨겨놓고 몰래 가서 끓여먹곤 했어요.”

사라예보의 영광
1973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이에리사는 한국에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을 선사했다. 당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이에리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 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 선수들은 행복하게 운동하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러다가 “선수나 지도자가 아닌 체육행정가로서 선수촌에 들어와 보니 체육회의 인원과 예산이 여전히 적은 데 놀랐다”고 대뜸 말을 바꿨다.

“지난 외환위기 때 많은 직원이 그만뒀다고 해요. 한국이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이라고 하지만 한국 스포츠의 요람인 태릉선수촌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남은 직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를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지요.”

결혼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9년간 대표선수 생활을 한 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자 일과 결혼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두 가지 일은 동시에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당시 사회 분위기도 결혼한 여자가 지도자가 되긴 사실상 불가능했죠.”

결국 그는 ‘탁구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를 통보했다. 집에서 펄쩍 뛴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요즘은 누구도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 촌장은 다른 형제가 모두 결혼해 요즘은 조카들 보는 게 즐거울 뿐이다.

그래도 이 촌장은 굳이 자신을 ‘독신’이 아닌 ‘미혼’으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남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일에 몰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촌장실에 배달된 수많은 축하 화분 중에서 그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화분뿐이다. 이 촌장보다 두 살 위인 박 대표 역시 미혼으로 이 촌장이 선수 시절 태릉에서 가끔 만나 탁구를 배우곤 했다.

“별 뜻은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고요. 다만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저도 여성 촌장이 와서 잘못됐다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굳이 촌장실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는 이 촌장을 보면서 선수촌에 조용하지만 대단한 변화가 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이에리사 선수촌장은…▼

△1954년 충남 보령 출생

△1973년 서울여상 졸업, 신탁은행 입단

△1985년 경희대 탁구코치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대표 감독

△1990년 명지대 졸업

△1996년 명지대 이학박사

△2000년∼현재 용인대 사회체육학과 교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대표 감독

<입상 경력>

△1970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주니어부 개인 단식 우승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1976년 국제오픈탁구선수권대회 개인 단복식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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