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당당한 ‘세상의 절반’]<3>공직사회 여성파워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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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양성평등임용목표제(공무원 전체 합격자 중 어느 한 성의 합격자가 30%를 밑돌 경우 선발 예정 인원 외에 추가 합격자를 선발하는 제도)가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03년 6월 실시된 서울시지방공무원 9급 임용 필기시험에서는 남성 합격자 비율이 29%에 불과해 그해부터 실시한 양성평등임용목표제를 적용해 서울시는 남성을 추가로 합격시켜야 했다.

여성의 공직 진출이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공직의 상당 분야에서 양성평등임용목표제는 남성을 위해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시 행시 외시 합격자 급증=지난해 치러진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의 수석합격자는 전부 여성이었다. 이 외에도 행시 기술직(옛 기술고시) 변리사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등 주요 8개 국가자격시험의 수석도 여성이 모두 싹쓸이했다.

양적으로도 놀랍다. 사시 여성 합격자 수는 꾸준히 늘어 1994년 31명(10.7%)에서 지난해에는 246명(24.3%)이나 됐다. 예비판사 여성 임용비율은 올해 48.4%로 절반에 가까워졌다.

지난해 행시 외시의 여성 합격자 비중도 각각 40%에 육박했다.

2003년 기준으로 전체 공무원 중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34%. 아직까지는 9급 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점차 사시 행시 외시 등에 합격하는 고급 인력이 상층부로 대거 진입하면 향후 공직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여성개발원 이수연(李秀連) 사회문화연구부장은 “공직사회는 성차별이 덜하고 여성할당제도 비교적 잘돼 있어 여성들의 진출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하지만 공직 고위층에 여성이 더 많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결혼 후 육아와 같은 문제점이 먼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직은 여인천하, 군경도 진입 늘듯=여풍(女風)의 힘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은 교육계. 지난해 초중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모두 60%를 넘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실시한 ‘공립 초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에서는 합격자의 89.8%가 여성이었다.

초중고교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강세였던 대학 강단에도 여성들이 대거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서울대는 올해 지금까지 여교수가 한 명도 없었던 경영대와 환경대학원에 각각 1명의 여교수를 임용했다. 지난해 서울대의 전체 신규 임용교수 126명 중 35명(27.8%)이 여성.

금녀(禁女)의 공간이었던 군인 경찰직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육해공군 모두를 포함한 여군 장교 및 부사관은 3382명(2.23%)이고 여경은 지난해 4월 기준으로 3519명(4.2%)이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여군을 전체 군 간부의 5% 수준인 7000명까지 늘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경찰청도 ‘여경 승진 목표제’와 ‘여경 채용 목표제’를 시행하기로 해 여군과 여경의 비율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여성위원회 김복규(金福圭) 위원장은 “앞으로 공직사회에서 여성들의 진출은 하위직뿐만 아니라 상위직에도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할당제와 같은 제도개선뿐만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경쟁 무대를 넓히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고위직은 아직 ‘여성 가뭄’▼

전체 공무원 3명 가운데 1명은 여성이다. 하지만 5급 이상 간부급 공무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15명에 1명꼴로 매우 낮다.

2003년 현재 전체 공무원 89만1949명 가운데 여성은 30만2830명으로 전체의 33.95%. 게다가 여성공무원 비율은 해마다 1%씩 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15년 뒤에는 남녀 공무원 비율이 비슷해질 전망.

하지만 5급 이상 간부급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9월 현재 5급 이상 여성 간부는 1233명으로 전체의 6.8%. 그나마 3급 이상은 1급 1.5%, 2급 1.8%, 3급 2.5% 등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처럼 간부급 여성공무원 비율이 낮은 이유는 지난 수십 년간 고위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행정고시 출신 간부가 적었기 때문.

최근엔 행정고시 합격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25∼40%에 이르지만 10∼20년 전엔 여성 합격자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정부는 간부급 여성공무원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2002년 초 ‘여성관리직 확대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해 오고 있다. 2002년 3월 당시 4.8%였던 5급 이상 여성공무원의 비율을 2006년 말까지 1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이 계획의 목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승진 심사 때 여성이 승진 후보로 올라있는 경우 가급적 우대한다는 지침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또 과장급(4급) 이상 간부 가운데 여성이 한 명도 없는 부처는 적어도 한 명은 여성으로 임용하도록 하고 있다. 2월 현재 과장급 이상 간부 가운데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부처 비율은 25%. 이들 부처는 내년 말까지 반드시 여성 국·과장을 임용해야 한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때 여성의 심리적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 대체인력 제도를 확대하고 해외연수 등 각종 교육 훈련의 기회가 있을 때 여성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 시행으로 현재 5급 이상 여성공무원의 비율은 매년 1% 안팎씩 늘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상위직 공직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행정고시 합격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30%를 훌쩍 넘어서는 등의 추세로 미뤄볼 때 10여 년 뒤에는 상위직에서도 여성 비율이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잘나가던 직장여성’ 왜 그만둘까▼

2003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퇴직혁명(opt out revolution)’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조명한 기사였다.

미국에선 펩시콜라 최고경영자(CEO)였던 브렌다 반즈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선거 참모였던 캐런 휴스 같은 쟁쟁한 여걸들이 일을 그만둔 사실이 최근 몇 년 동안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들은 같은 이유로 직장을 떠났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영학술지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 3월호는 이 문제를 다룬 기사에 ‘출구차로와 진입차로(off ramps and on ramps)’라는 제목을 붙였다. 잠시라도 직장을 떠나는 것을 출세가 보장된 고속도로에서 내려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 기사에 인용된 보고서엔 28∼55세의 대졸 이상 직장여성 2443명을 설문 조사해 퇴직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은 결과가 담겨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37%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자녀가 있을 때 이 비율은 43%로 높아졌다. 이에 비해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남성은 24%에 그쳤다.

왜 일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일까. 여성들의 답변 가운데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44%)가 가장 많았다. ‘자격증이나 교육을 위해서’(23%)나 ‘일에 대한 불만’(17%)은 그 다음이었다. 이에 비해 남성은 ‘직장을 옮기기 위해서’(29%)가 가장 많았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응답은 불과 12%였다.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삼성전자 인사팀 관계자는 “미국에선 조직 내에서 자리를 잡은 여성이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기업에선 입사 3년차에서 대리급 정도의 여성 사원이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퇴직 이유도 미국과 차이가 있다. ‘비전이 없다’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게 가장 많다는 것. 오히려 아이가 생기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무조건 남으려는 경향이 높아진다. 보고서는 “여성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선 경영자들은 여성을 단순히 ‘치마 입은 남성’ 정도로 취급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가정에 시간을 쏟고 싶어 하는 그들의 사고를 이해하고 자율시간근무제 같은 대안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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