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이수훈]동북아, 화약고로 변하나

  • 입력 2004년 11월 25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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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과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잇따른 외교, 국방 요직 포진으로 우리 국민은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무력사용 불가라는 한국민의 의지를 신뢰하고, 6자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어 간다는 원칙을 확고히 함에 따라 일단 한숨을 놓게 됐다.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의 주도성을 인정한다는 합의는 일견 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운신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 아닐 수 없다. 북핵 문제로 지난 2년간 우리가 겪어 온 외교안보상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결과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지역국가들 앞다퉈 군비증강▼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에 대해 국제공조를 강조한 우리의 의사 표명은 세계적 흐름에 부합되는 일이고,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호혜적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하는 조처로서 외교전략상 적절한 대응이다. 부시 대통령도 북핵 문제 해결을 제2기 행정부의 역점 과제로 삼겠다는 점에 합의했고, 동북아의 평화 정착에 대외정책의 주안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적절한 의사 표명이고, 우리로서는 환영할 만한 사태 전개다.

그런데 동북아의 평화 담론이 무성한 가운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는 측면이 다분해 우려스럽다. 지금 동북아의 현실은 역내 각 국가가 마치 군비 경쟁을 벌이듯 과도한 군사화의 길을 가고 있다. 즉 비핵화와 테러 방지를 외치는 가운데 실제 현실은 역내 모든 국가가 경쟁적으로 군비 확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전환하는 헌법 9조 개정안을 내놓았다고 해서 논란이 많았다. 일본이 이제 드러내 놓고 군사대국화의 길로 가고자 하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논평이 주류였다. 일본은 헌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질적으로 이미 군사대국이며, 실제로 2003년 군사비가 400억달러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보통국가화’라는 계획이 성공하면 일본은 질적 수준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막강한 군사대국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군사비를 급격하게 증가시켜 왔다. 지난해 중국의 군사비는 311억달러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랐다. 중국은 대국화의 길을 지속적으로 걸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계획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 군사비 증가는 예견되는 일이다. 게다가 대만마저 독립의 열망을 품고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맞서 힘을 키우고 있다.

한국도 자주국방 구호에 따라 군사비를 늘리고 있다. 국방부 계획에 따르면 2008년까지 매년 국방예산을 11% 증가시켜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2.8%에서 3.2%로 증액하기로 했다. 미국의 안보우산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하여간 우리도 군사비 증액의 길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역내 다른 국가들과 다르지 않다.

북한은 정도가 더 심하다. 북한은 체제안전을 위해 핵카드에 기대어 왔을뿐더러 과도한 재래식 전력에 의존함으로써 체제에 막대한 압박을 가하는 역설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자기네 군사비가 총생산액 대비 13%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총예산의 3분의 1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북한은 명실공히 군사국가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경제회생에 많은 자원을 돌려도 시원찮을 마당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6자회담서 공동 안보 논의를▼

이렇듯 동북아 국가들이 군비 확장 노선을 걸음에 따라 동북아는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 이는 평화를 부르짖는 각국의 원칙을 배반하는 일종의 자가당착이다. 6자회담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해법도 찾아야 하지만 역내 공동안보의 합의도 마련해 불필요한 군비 확산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기를 쌓고 군비증강에 진력하다 보면 평화의 저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핵문제 해소도 중요하지만 큰 틀의 군비통제를 염두에 둘 때가 됐다.

이수훈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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