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배금자/태산과 바다의 가르침

  • 입력 2004년 6월 3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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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경제가 어려운 데다가 사회는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고 배척과 뺄셈의 조류가 지배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의견이 다른 상대를 악의로 비난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방송에서도 적의에 찬 공격이 넘친다.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일들이 많다. 비판과 토론문화의 산실인 대학에서조차 탄핵찬성 의견은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이고, 언론개혁을 외치는데 정작 저질 편파 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방송보다는 비판적인 신문만 주된 대상으로 삼는다.

▼편가르기 일삼으며 말로는 “상생”▼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넋을 위로한다며 타워팰리스 앞에서 ‘빈곤위령제’를 열어 부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발산한다.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은 일방적인 기준에 따라 낙선자 명단을 내놓고 그것이 절대적인 양 주장한다. 폭력영화를 찍어야 상을 받고, 조폭이 인기를 누리고, 살인도 추억이 되는 세상이다. 증오와 폭력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낳고, 부정적인 에너지는 사회와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시중에는 불안한 사람들이 점집을 찾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상인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한숨을 쉰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최고지도자는 국민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보여야 함에도 “후보가 되기 전에 점치고 확신했다”거나, 자신의 “사주가 괜찮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강력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통합과 단결이 필수요소이고 최고지도자는 더더욱 국민들의 통합과 단결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최고지도자는 취임 이래 줄곧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더니, 탄핵심판 기간 중 자중을 기대했던 국민의 생각과는 달리 “보수는 힘센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절반의 국민을 배척한다.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말로는 ‘상생’을 수없이 외치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아직도 재벌총수들은 청와대에 불려 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서 군사정권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하게 한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크고, 바다는 실개천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깊다고 했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태산과 바다의 가르침을 좇아 국가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이념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당 태종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위징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직언을 하는 고위직에 중용해 정관의 치적을 이루었다. 그 배짱은 오늘날 지도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념보다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이 세계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70년대 2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있던 영국은 대처 총리의 지도 아래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이때 대처 총리는 소련 공산주의와 공존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우리는 같은 지구에 살고 있으며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웅변했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고 민족번영의 기반을 구축하여 통일시대로 가려면 사람 자원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우선 남한의 5000만이라도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조차 변함없이 편 가르기, 배척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으니 실망이 크다.

▼관용과 비전 갖춘 리더십 기대▼

그러나 숱한 어리석은 사람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런대로 굴러온 것은 우리의 과거 역사가 그러했듯이 영적 수행을 하는 성직자, 사랑과 자비, 관용이 가득한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힘 덕분이라 믿는다. 숱한 국난을 겪으면서도 나라를 지탱해 온 힘은 국민의 간절한 나라사랑과 올바른 정신에서 나왔다고 본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올바른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고 용기와 지혜, 관용을 갖춰야 자격이 있다. 도덕적이고 차원 높은 정신적 가치를 구비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부디 올바른 가치관, 선한 기운, 상생의 철학과 우주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결집시켜 국운을 융성하게 하기를 염원한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bae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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