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칼럼]진보주의 ‘개념과 현실’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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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일본 지식인들이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역사와 문화가 다른 서구의 용어를 어떻게 한자어로 번역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가령 ‘love’에 근접한 한자어는 ‘연(戀)’이나 ‘애(愛)’인데 ‘연’은 남녀간의 육체적 열정을 뜻하고 ‘애’는 부모의 자식 사랑을 가리키기 때문에 유럽풍의 낭만적인 청춘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젊은 이성간의 아름다운 열망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이런저런 역어가 사용되다가 1890년 한 잡지사의 편집자가 ‘연애’를 사용한 글을 발표한 이후 이 말이 번져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연애’는 ‘연’이나 ‘애’가 기왕에 갖고 있던 것과 다른, 보다 고상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신선한 말로 다가왔다.

▼서구어 사전에선 찾기 어려운 단어▼

이런 ‘번역어 성립 사정’(서혜영 옮김)을 소개하면서 저자인 야나부 아키라(柳父章)는 ‘연애’란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일본에서도 비로소 서구적 연애가 하나의 풍속으로 생겨났다고 말한다. ‘로맨스’나 ‘파우스트’에서 볼 수 있는 그런 ‘love’는 일본 전통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니피앙(기표·記票)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의 시니피에(기의·記意)는 그 후에 일구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처럼 먼저 말이 있고 그에 따라 실체가 생겨났다는 이 관점은 동양 사회에는 없던 서구적 개념으로서의 ‘개인’ ‘근대’ ‘존재’ ‘자연’ 등,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러워진 용어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령 ‘사회’란 말도 그렇다. ‘society’는 19세기 전반부터 ‘반려’ ‘교제’ ‘집합’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도 ‘인간교제’라고 옮겼다. 그러던 것이 1870년대에 이르러서야 ‘단체’를 뜻하는 ‘사’와 ‘모임’을 가리키는 ‘회’를 합성해서 ‘사회’란 말로 옮겨졌고 그게 번지면서 일정한 용어로 정착했다. 이렇게 번역에 혼란을 겪어야 했던 것은 당시 일본에서 “‘society’에 대응할 만한 현실도, 역사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야나부의 지적이다.

일본의 개화기 지식인들은 일본에는 없는 서구적 개념을 어떻게 한자어로 옮길 것인가로 고심하며 이것저것 써 보다가 새 말을 만들었으며 그 신조어가 거꾸로 실체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밟았다는 사실을 야나부는 번역어의 역사를 통해 흥미롭게 짚어 내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기 지식인들은 대체로 일본을 통해 서구와 근대의 문화를 수용했고 그것도 같은 한자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 일본 지식인들이 겪은 고민의 과정을 건너뛰며 어렵지 않게 서구 문화를 배우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서구적 개념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고뇌도 희미했고 근대적인 가치의 실체화에서도 그만큼 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 ‘사회주의’ 같은 용어를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오래지만 그 말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이 실제로 우리에게 확인된 것은 겨우 반 세대 전이었다.

▼‘말의 생성과 실제화’ 험난한 과정▼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진보주의’인데, 서구어의 사전에는 ‘보수주의’의 반대말이 ‘급진주의’ ‘유물론’ 혹은 ‘마르크시즘’으로 나와 있고 우리식으로 영역될 수 있는 ‘progressivism’이란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서구와 우리의 역사에서 이념적 현실적 전개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진보주의’란 용어도 그렇게 다른 내포와 활용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사정이 어떻든, 지난 총선과 대통령 탄핵 기각 사태에 대해 이제 한국에 좌파 진보 세력이 현실화되었다고 평했다는 외신 보도를 보고, 말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말이 실체화되는 길고도 험했던 시간들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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