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발레리 데니소프/韓-러 120년 ‘과거속의 미래’

  • 입력 2004년 4월 1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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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복잡했다. 조선 왕조 내부에서는 개화를 추진하는 세력과 기존의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중국 일본 미국은 한반도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고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러시아가 한국의 ‘문을 연’ 최초의 열강은 아니었다. 1884년까지 한국은 이미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등과 차례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반면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는 공식관계가 없었다. 비록 인적 접촉과 교역은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양국 국민은 서로 접근하면서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러시아의 탐험가들은 한국인들이 인간적이고 도덕성이 높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식 관계가 있기 훨씬 전인 1864년 러시아 연해주로 최초의 한국인 이민들이 넘어왔다.

1884년 7월 7일 주변 열강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외교관 카를 베베르와 조선의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였던 김병시(金炳始) 전권대신이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나름대로의 역사적 역할을 했다. 일본이나 다른 열강이 한국을 복속시키지 못하도록 25년 동안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또 한반도가 러시아에 대한 적대세력들의 근거지로 변하지 않도록 막아 줬다.

단절의 시기도 있었다. 그 후 러시아와 한반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반도에는 반세기 넘게 서로 다른 방향과 가치를 추구하는 두 개의 정부가 있다. 대한민국은 성공적으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를 강화했다.

북한은 다른 역사적 과정을 밟았다. ‘조선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했다. 남북한 중 어떤 쪽의 역사적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판정해 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1990년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양국은 정치 경제 통상 문화 등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동반자다. 다만 경제협력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친다. 42억달러의 교역과 2억7000만달러의 투자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최근 경제협력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다. 이르쿠츠크 코빅타 가스전의 가스를 한국에 연간 100억m³씩 제공하는 국제적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한반도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결해 물류비용과 운송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려는 계획도 나와 있다. 지난해 대(對)러시아 경협차관 채무를 재조정한 것이 양국 경제관계 발전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됐다.

한국의 내부 상황이 정리되면 당초 계획대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초기부터 한국과 러시아는 긴밀한 접촉을 유지했고 해결 방안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이렇게 보면 한-러 관계의 미래는 긍정적이다. 두 나라는 관계 발전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폭넓고 생산적인 상호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것은 역내의 정치적 안정과 평화를 원하는 모든 동북아 국가의 희망과도 일치한다.

발레리 데니소프 러시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교수

약력: △1941년생 △러 외교아카데미 박사(사회주의헌법 북한정치) △김일성대 유학 △20년 동안 북한 주재 외교관으로 근무 △북한 주재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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