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박성희/국민이 솔로몬 되자

  • 입력 2004년 4월 8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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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난한 청년이 시장에서 빵 한 덩어리를 샀다. 그는 코끝을 간질거리는 맛난 냄새에 이끌려 어느 고급 식당 앞에 자리를 잡았다. 청년은 산해진미의 냄새를 맘껏 들이마시며, 빵 하나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이것을 본 식당 주인이 그에게 다가가 청구서를 내밀었다. 냄새에 대한 값을 내라는 것이었다. 청년은 펄쩍 뛰었고 그 둘은 마침내 솔로몬 왕 앞에 갔다. 솔로몬 왕은 음식값을 동전으로 가져오게 했다. 식당 주인은 내심 기뻐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솔로몬 왕은 주인에게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를 실컷 들려준 뒤 청년에게 이제 되었으니 가라고 한 것이다. (음식) 냄새의 값으로는 (돈) 소리가 제격이라는 판결이었다.

▼논리뒤에 숨은 탐욕 가려내는 지혜 ▼

솔로몬의 명판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솔로몬의 지혜는 다름 아닌 상대방의 논리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솔로몬이 새로운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세운 논리 속의 허점을 짚고 그 뒤에 숨은 탐욕을 탐색해 내는 방법이다. 진술의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턱없는 욕심인 경우가 많다. 솔로몬은 논리적인 오류에서 탐욕을 찾아내는 재주가 특별했다.

총선이 성큼 다가왔다. 탄핵 심판론과 거대 여당 저지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총선정국을 보면서 이제는 국민이 솔로몬이 되어야 하는 절박함을 느낀다. 탄핵 자체만 놓고 보면 절차도 정당하고 이유도 있었다. 10분의 1이 어떻고 하는 꼼수나 쓰다가 사과는커녕 제 식구나 감싸고, 한 기업인을 공개 망신 주는 대통령의 언행은 심정적인 ‘탄핵감’이다. 그렇다고 국민이 바보인가. 트럭째 불법자금을 실어 날라 주머닛돈 쌈짓돈으로 갈라 쓰고, 동료 의원을 다수의 힘으로 감옥에서 끌어내 온 사람들이 탄핵은 무슨 탄핵? 이건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국민은 생각한 것이다.

성난 얼굴의 여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동북아 평화를 정착시킨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이만하면 해피엔딩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그게 ‘엔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우선 국민은 탄핵소추를 받고야만 대통령을 선출한 잘못과 탄핵안을 정략적으로 발의한 시원찮은 선량들을 대거 국회로 보낸 잘못을 했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고, 잘못 뽑았다면 탄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민은 이도 저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대통령도 한때는 국회의원이었다. 낮은 지지율과 높은 탄핵 반대의 이중성 속에서 국민은 행복해질 수 없다.

다수당은 스스로 민심이라고 믿은 숫자의 힘도 소용이 없다는 무기력에, 소수당은 여론이 밀면 세상에 바꾸지 못할 것이 없다는 무소불위의 도취에 빠질 것이다. 둘 다 건강하지 못하다. 국민은 국회를 불신하고, 대통령은 고양이보다 목숨이 질긴 엄청난 대통령 프리미엄을 맛볼 것이다. 이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번 총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순의 정치를 생성 초기부터 다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멋진 정치를 보고 싶으면 그런 사람을 국회로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食言하지 않을 국회의원 찾아내야 ▼

정치인의 모순은 대개 식언(食言)에서 비롯된다. 솔로몬의 감별법에 따르면 식언은 탐욕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자기가 한 말을 삼키는 정치인은 정치판을 늘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왔다. 보통사람이라면 머쓱해 하는 선에서 끝날 일이지만 정치인들의 식언은 국가적인 혼란과 정책의 혼선으로 이어진다.

쉽사리 식언하지 않을 사람은 우선 염치(廉恥)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명료한 비전을 오래 삭혀 온 사람일 것이다. 곰삭은 비전은 철따라 바뀌지 않고 세론에 쉽게 영합하지 않는다. 신선하되 미숙하지 않고, 단순하되 무지하지 않은 후보일 것이다. 느낌이 깨끗하고 청량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덧없이 흔들리거나 탄핵받지 않을 것이다. 15일, 국민은 다시 한번 솔로몬이 될 수 있다.

박성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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