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일영/‘득표의 내용’이 중요하다

  • 입력 2004년 4월 1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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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이번 4·15총선은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것 같다. 어떤 선거가 기존의 정치지형을 허무는 의미를 지닐 때 정치학에서는 중대 선거라는 말을 쓴다. 이번 총선을 통해 기존의 한국 정치가 지녔던 지역적, 이념적, 성적(性的) 담합구조가 깨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 이 점에서 이번 선거는 한국정치사에서 획기적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번 총선은 한국 정치가 명실상부하게 ‘포스트 3김’ 시대의 문을 열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선거이다. 3김(정확히는 2김) 정치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공헌도 있었지만 지역주의와 부패라는 무거운 짐을 한국 정치에 안겨주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 짐을 털어버린다면 한국 정치는 ‘포스트 민주화’의 단계로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 한국정치사 전기될 것 ▼

포스트 3김 시대의 대권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차지했다. 그는 3김 시대의 한 축인 민주당을 모태로 해 탄생했지만 스스로의 존재기반을 부인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떨어져 나갔다. 명분은 3김 시대의 유산인 지역주의 및 부패 정치와의 결별이었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실험이 대통령제 하에서 또 하나의 권력 축인 의회 차원에서도 성공할지는 이번 총선 결과에 달려 있다. 야당, 특히 한나라당 역시 구(舊)정치와 결별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폭적인 공천물갈이와 지도부 교체 등을 통해 기존의 낡고 부패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탄핵이라는 돌발변수 때문에 한나라당의 개선 노력보다는 노 대통령의 실험이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단순히 원내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해서 3김 정치 종식의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의석수보다 득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비록 의석수는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강화된 선거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특정지역에 치우치지 않게 득표하는 정당이 다수 나와야 이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것이다.

이번 총선이 ‘중대 선거’가 될 것 같은 또 다른 이유는 진보정당의 원내진입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이것이 실현될 경우 한국 정치판은 보수 일색에서 다양한 색깔로 변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에 파묻혀 정책대결을 펼치지 못했는데, 진보정당의 등장은 정책을 정치의 중심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원내진입을 통해 한국의 진보정당도 원외에서 무책임하게 목소리만 높이던 구태를 벗어나 원내에서 보다 책임 있는 공당(公黨)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의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여성의 정치권 진입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자민련을 뺀 나머지 당은 비례대표의 절반을 여성에게 할애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구에는 여성공천자가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성정치인이 선거를 지휘하고 있거나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볼 때 3김 정치 이후의 빈 자리의 상당 부분을 여성 정치인이 메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음 대선에서 의미 있는 복수(複數)의 여성후보자를 볼 확률도 적지 않다.

▼지역-性담합구조 깨는 계기돼야 ▼

이러한 여성의 대규모적인 정치권 진입은 기존의 한국 정치판이 보여준 남성 담합구조를 깨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동안 정치는 민주화되었지만 그 수혜 범위는 남성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면서도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했다. 여성에게 정치시장의 문턱이 높았던 탓도 있고, 여성유권자가 여성정치인을 기피하는 한국의 기이한 정치풍토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계기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점에서 변화가 있어야 기존의 성적 담합구조를 무너뜨린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 3김 정치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영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정치학 iykim@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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