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경주…’ 나누고 베풀어 ‘300년 富’ 지켰다

  • 입력 2004년 3월 12일 21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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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전진문 지음/225쪽 1만1000원 황금가지

2001년 한 경영전문지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35년 넘도록 제자리를 지킨 기업은 16곳에 불과했다. 부(富)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부와 권력으로 200년 가까이 유럽을 지배했다. 경주 최부잣 집은 그보다 100년이나 더 오랫동안 부를 지켰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며 현대 경영학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최부잣집’은 어떤 가문인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큰 전공을 세운 정무공 최진립에서 시작해 경북 경주 일대에서 12대에 걸쳐 부를 일군 집안이다. 그 경영 비결을 저자는 현대적 의미로 풀어내고 있다.

경북 경주시 교리에 있는 최 부잣집의 안채. 경주 최 부잣집은 근검절약과 적정 이윤의 추구, 지역사회와 공생을 통해 300년이 넘도록 ‘아름다운 부’를 유지했다.사진제공 황금가지

▽한국적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노사관계를 실천한다=최씨 집안은 최진립과 함께 전사한 충노(忠奴)에 대해서도 제사를 지냈다. 2대 부자 최동량은 ‘노비는 양반의 수족과 같다. 일꾼도 사람의 아들딸이니 잘 대접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마름을 두지 않아 중간관리자의 착취가 없었다.

▽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위만을 갖는다=최진립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일렀다. 양반 신분의 유지는 권력에 수탈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건이었지만, 높은 벼슬을 가지면 권력구조가 바뀔 때 보복당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적정 이윤을 추구하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3대 부자 최국선은 현종대에 큰 흉년이 들자 ‘사방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명했다. 이 원칙은 기근 때마다 실천에 옮겨졌다. 4대 최의기는 ‘재산은 만 석 이상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후손들은 소작료를 낮춰 ‘이윤’을 조정했고, 농민들은 누가 땅을 판다는 소문만 들으면 최 부자가 사도록 설득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활빈당’이 최부잣집을 습격했지만 가난한 이웃들에게 베풀어온 덕을 알고 조용히 물러갔다.

▽근검절약을 실천한다=며느리들은 시집오면 3년간 무명옷을 입었다. 최씨들도 소작인과 마찬가지로 이른 새벽부터 솔선해서 논으로 나갔다. 그러나 과객은 후하게 대접해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최부잣집의 재산은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까. 12대 최준은 3세기 동안 지켜온 가재(家財)를 광복 후 민립대학인 대구대학과 계림대학 설립에 털어넣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영남대와 영남이공대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버린다’는 최씨 집안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소중한 덕목을 실천했던 것.

최 부자 집안의 가양주(家釀酒)인 ‘경주 법주’의 탄생 사연, 아무런 기약 없이 상하이임시정부에 보냈던 비밀 독립자금이 광복을 맞아 귀국한 백범 김구의 장부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는 비화 등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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