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피터팬'…어린시절 꿈이여 안녕

  • 입력 2004년 2월 12일 1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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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뮤지컬로 공연된 ‘피터팬’을 보고 매료된 적이 있다. 윤복희씨가 연기한 피터팬이 무대 위를 훨훨 날아다니며 “어린이여, 모여라!”라는 주제곡을 부를 때 정말 신이 났다. 그때는 ‘피터팬’이 어린이를 위한 모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영화로 만들어져 현재 상영 중인 ‘피터팬’을 다시 보니 사실은 어른을 위한 동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피터팬’을 이끌어가는 것은 어른이 된 웬디(레이첼 허드-우드)가 옛날을 회상하는 내레이션이다. ‘피터팬’은 그녀가 피터팬(제레미 섬터)과 함께 네버랜드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를 그린다. 이 영화는 피터의 이야기가 아니라 웬디의 이야기다.

13세인 웬디에게 숙녀가 되는 훈련을 시작하라는 명령은 사춘기에 막 들어서는 여자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맞닥뜨리는 압력이다. 아직 어린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성스러워질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압력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을 갖는다. 어린시절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웬디 역시 갑작스럽게 성인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큰 불안을 느꼈다. 그날 밤에 피터를 만나 네버랜드로 떠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바로 그런 불안을 떨치고 어린 아이의 시절에 안착하고 싶다는 웬디의 바람이 사람의 모습을 얻으면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피터는 웬디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인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웬디는 네버랜드에서 길 잃은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술’이 ‘키스할 수 있는 입술’로 성숙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성간의 사랑에도 눈을 뜰 뿐 아니라 그 사랑의 신화적인 힘도 경험한다. 또한 성인 여성으로 이행하는 데 따른 불안, 즉 후크같은 성인 남성(들)에 의해 신체를 손상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지혜와 용기로 극복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아이들과 요정들이 있는 안전한 환상의 세계에서 시간을 정지시킨 채 어른의 역할을 연습해 본 것이다. 웬디의 아버지와 후크의 역할은 동일한 배우(제이슨 아이삭스)가 연기했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뮤지컬 ‘피터팬’이 시작됐을 때부터의 전통이라고 하지만 네버랜드가 웬디의 환상임을 말해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결국 웬디가 택한 것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불가피한 선택이다. 네버랜드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웬디는 피터와 이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에 영원한 이별을 고한 것이다. 요정의 존재를 믿는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평생을 두고 좀 더 용감하게 삶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피터가 이후에 한 번도 웬디를 찾아오지 않았듯 어린 시절은 기억할 수는 있어도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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