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美 제1의 파워 경제인' 워런 버핏

  • 입력 2003년 8월 7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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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동아일보 자료사진
워런 버핏, 동아일보 자료사진
뉴욕 월가로부터 2000km나 떨어진 미국 서부 네브래스카주의 작은 도시 오마하. 한 회색 벽돌집에는 백발노인이 45년째 살고 있다. 노인은 아침이면 가판대로 걸어 나와 신문을 사 보며 식사 때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사들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집에서 시간이 남으면 미식축구 TV중계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카드 게임을 즐긴다.

이 평범한 노인이 바로 주식투자 하나로 350억달러(약 41조원)를 번 세계 제2의 부자 ‘오마하의 현인(賢人)’ 워런 버핏(72)이다.

버핏씨는 말한다. “좋은 집에 사는 것과 좋은 차를 타는 것? 관심 없다. 내 관심은 버크셔 해서웨이(버핏이 이끄는 금융지주회사)를 잘 경영해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뿐이다.”

미국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천은 최신호(18일자)에서 버핏씨를 ‘미국 제1의 파워 경제인’으로 선정했다. 돈으로만 따지면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재산이 버핏씨 보다 많다. 그러나 포천지는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라는 영광을 게이츠 회장이 아닌 버핏씨에게 돌렸다.

● 잃지 않는 투자자

1990년대 버핏씨는 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골프를 했다. 그 CEO가 버핏씨에게 “이번 홀에서 당신이 2달러를 걸고 티샷을 해 홀인원을 하면 내가 1만달러를 주겠다”며 내기를 제안했다.

재미 삼아 해 볼 수도 있었지만 버핏씨는 “그렇게 확률이 낮은 도박은 안 한다”며 정색하고 거절했다. 무안해진 CEO가 “그렇게 부자면서 2달러 갖고 뭘 그렇게 벌벌 떠느냐”고 묻자 버핏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2달러로 투기를 하는 사람은 1만달러를 손에 쥐어줘도 마찬가지로 투기를 합니다. 이길 확률이 없는데 요행을 바라는 것은 투기꾼이나 할 짓이지 투자자가 할 일이 아니지요.”

버핏씨는 ‘대박을 노린 투기’를 끔찍이 싫어했다. 저평가된 좋은 기업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평범한 원칙만이 돈을 버는 올바른 길이라는 고집을 지켰다.

그가 늘 입버릇처럼 밝히는 투자 철학 두 가지.

첫째, 돈을 잃지 않는다.

둘째, 첫째항을 항상 지킨다.

버핏씨는 65년 오마하에 버크셔 해서웨이를 설립했다. 그런데 버크셔는 지난해까지 38년 동안 연간 투자 수익률이 50%를 넘은 적이 한 번밖에 없다. 열 배, 스무 배는커녕 1년에 원금이 갑절로 불어난 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식투자로 세계 제2의 부자가 됐다. 바로 ‘돈을 잃지 않는다’는 투자 원칙을 항상 지켰기 때문.

이 회사가 설립 이후 38년간 투자로 손해를 본 해는 2001년뿐, 65년부터 2000년까지 36년 연속 이익을 봤다. 수익률은 매년 평균 25∼30%. 고만고만한 수익률을 36년간 이어온 결과 버크셔의 투자 원금은 3000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는 투기 대신 철저히 기업 실적 위주의 정석 투자를 고집한 결과라는 평가다.

● 행동하는 투자자

버핏씨는 ‘행동하는 투자자’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잘못이 발견되면 주주로서 거침없이 회사를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한다.

지난해 7월 워싱턴 포스트는 독특한 양심선언을 했다.

“그동안 우리는 기사를 통해 기업들이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스톡옵션도 어차피 직원들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라면 장부에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투명 회계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지난해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아 약 360만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린 것처럼 장부를 꾸몄다.”

이 양심선언의 뒤편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주요 주주인 버핏씨가 있었다. 버핏씨는 93년부터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버핏씨는 2001년 말부터 엔론 회계 부정으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자신이 주요 주주로 있는 워싱턴 포스트 경영진에 “완벽하게 깨끗한 회계 장부를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당장은 힘들겠지만 먼 훗날 다른 모든 기업이 쓰러져도 워싱턴 포스트는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강하게 설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조언을 따랐고 코카콜라 질레트 등도 잇따라 버핏씨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올해 4월 버핏씨는 워싱턴 코트 호텔에서 열린 ‘책임지는 부자’라는 이름의 모임에 모습을 드러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연설 순서가 오자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1만3000가구의 소득이 못 사는 2000만가구 소득과 맞먹는 불평등한 현실에서 조지 W 부시 정부가 추진하는 상속세 폐지 법안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부시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역점을 두는 배당세 폐지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배당세가 없어지면 가장 큰 혜택을 입을 당사자가 바로 버핏씨이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경제 정의가 바로 선다는 소신 때문이다.

5월에 인구 39만명의 소도시 오마하에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무려 1만5000명이 몰려들었다.

버핏씨는 주총 내내 아내 수전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주주들과 함께 밥 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토론했다. 버핏과 수전씨는 부부지만 77년 이후 별거 상태. 특이한 것은 현재 버핏의 동거녀인 애스트리드 멩크스를 수전씨가 직접 버핏에게 소개했다는 점과, 두 사람이 별거하면서도 공석에는 항상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버핏씨는 오래전부터 “내가 죽으면 재산 중 1%를 아내 수전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내 이름을 딴 재단에 기부하며 세 자녀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5월 3일 주주들과의 토론 시간. 아버지를 따라온 13세 중학생이 버핏씨에게 물었다.

“성공이 뭔가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거죠?”

잠깐 뜸을 들이던 버핏씨는 이렇게 답했다.

“사랑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이랍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모인 주주 여러분께 사랑 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파워 경제인 英BP 존 브라운 회장▼

포천지는 최신호에서 ‘미국 외 지역의 파워 경제인’으로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존 브라운 회장을 선정했다.

브라운 회장은 1987년 완전 민영화된 뒤 적자에 허덕이다 파산 직전에 몰린 BP를 95년부터 맡아 세계 2위의 석유회사로 도약시킨 인물. 이 공로로 98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브라운 회장은 ‘강한 뚝심의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98년 미국 아모코(AMOCO)와의 합병을 이끌어낸 것이나 99년 불가능하다고 생각돼 온 북해 포이나벤 유전 개발을 이뤄낸 것도 그 뚝심의 결과라는 평가. 실제 그는 석유 매장량이 큰 유전에 승부를 자주 거는데 매장량이 많을 것 같은 장소면 전쟁 중인 국가라도 탐사팀을 파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그는 석유회사 CEO로는 보기 드물게 환경단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98년 9월 “교토 환경 의정서 내용대로 지구 온난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기량을 2010년까지 10% 이상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유엔본부가 주는 99년 환경 지도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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