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프랑수아 고드망/미국을 견제할 자 누구인가

  • 입력 2003년 4월 23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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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이다. 그는 과연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아랍 중재자들로부터 미국이 어떻게 나갈지 듣지 못했을까. 왜 그는 유엔 무기사찰단이 던져준 마지막 생명줄을 잡지 않았을까?

수십년에 걸친 그의 정권 장악과 이라크 체제 수립 과정에서 그는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인물로 알려졌었다. 이 때문에 그가 최후의 순간에는 망명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후세인 대통령이 몇 시간 후면 B-1 폭격기가 공습을 퍼부을 바그다드 거리에서 과거처럼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며 열광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드는 것을 그의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3주 만에 궤멸되기는 했지만 이라크군도 그렇게 약체는 아니다. 미영 연합군의 공군력과 에이브럼스 탱크 부대가 없었다면 전쟁은 장기화됐을지 모른다. 역사상 미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이라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남부 바스라 지역에 주둔한 영국군은 이라크 국민과 좋은 관계를 맺었지만 바그다드 인근에서 미군이 한 것처럼 이라크군에 치명타를 가하지 못했다.

이처럼 전무후무한 도널드 럼즈펠드식의 군사작전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3년 만의 새로운 국제질서, 혹은 ‘새로운 국제 무질서’가 도래하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예스’다. 2001년 9·11사태 이후 일련의 사건이 주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교훈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첫째, 국제사회를 유지해 주는 두 개의 축, 즉 자유무역 등 국경 없는 세계로의 통합과 다극화 세계로 향하는 도구인 국제법 및 제도는 힘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게 입증됐다. 이라크 정부는 석유의 바다를 깔고 앉은 운 좋은 독재체제였다. 그 체제는 바깥 세계와 전쟁을 선택했다. 무제한적인 사찰을 요구하는 유엔 헌장만 갖고도 유엔은 몇 년 전 이라크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엔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국이 1991년 걸프전 때와 이번에 힘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세계는 더욱 위험한 곳이 됐을지 모른다.

둘째, 국제관계에서 강경 현실주의가 이 시대의 지배 파워에 의해 글로벌 시스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미국 신보수주의 매파의 석유에 대한 욕심(마치 다른 나라는 욕심이 없는 것처럼)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미국의 결정적인 행동이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호도했었다. 이제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됐다. 사담 후세인과 전쟁을 벌였다고 해서 아랍이나 이슬람권에서 어떤 격변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란도 전쟁 내내 중립을 지켰다.

셋째, 유럽은 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유럽과 서방 동맹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유럽의 자체 발전과 유럽통합에만 신경 쓰면서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는 어설픈 동맹을 용납하지 않는 미국 매파의 표적이 됐다. 유럽이 그렇게 단호하게 전쟁을 반대한 것은 대서양 사이에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덫이었다. 미영 연합군의 승리는 자명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질문이 남아 있다. 과연 누가 국제질서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미국을 경계할 것인가. 우리는 지구상의 유일한 슈퍼 파워가 다원주의를 포기하고, 결국 그러한 선택이 옳은 것으로 나타난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1941년 이래 미국 정치의 장점이자 위험은 문민 통제와 강력한 군대의 조합이다. 그러나 앞으로 군을 통제하는 문민이 군보다 더욱 호전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미국은 위험천만하게도 세계 최초의 민주 체제인 아테네와 닮아 있다. 기원전 5세기에 페리클레스라는 이름의 아테네 문민 지도자는 ‘민주주의와 번영을 위한 전쟁’을 강력히 주창했었다. 부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프랑수아 고드망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아시아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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