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나는 시]임영조 '시인의 모자'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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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조, ‘시인의 모자’

어딘가에 떨어뜨린 단추처럼

어딘가에 깜박 놓고 온 우산처럼

도무지 기억이 먼 유실물 하나

찾지 못해 몸보다 마음 바쁜 날

우연히 노들나루 지나다 보네

다 잡아도 놓치는 게 세월이라고

절레절레 연둣빛 바람 터는 봄 버들

그 머리채 끌고 가는 강물을 보네

저 도도하게 흐르는 푸른 물살도

갈수록 느는 건 삶에 지친 겹주름

볕에 보면 물비늘로 반짝이는 책

낙장 없이 펼쳐지는 대장경이네

어느 한 대목만 읽어도 아하!

내 생의 유실물이 모두 보이고

어영부영 지나온 산과 들이 보이네

내 마음 속 빈터에 몰래 심어둔

홀씨 하나 싹트는지 궁금한 봄날

거룻배 노 저어가 찾고 싶은 날

오던 길 새삼 뒤돌아보면 이런!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네.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네’

간혹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손이 닿지 않는 날개뼈 아래가 가려울 때처럼, 머리를 스쳐갔던 이름이나 찾으려던 물건이 떠오르지 않아, 애간장이 탈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는 물음 앞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지경에 이르면, 두 무릎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다. ‘몸보다 마음이 바쁜 날’이다. 그런 날이면 훌훌 털고 일어나 슬쩍, 세월의 바깥으로 나가볼 일이다. 그러면 거기, 고단한 삶의 주름들이 보이는데, 저런, 환한 봄볕을 받고 있는 강물이 경전으로 몸을 바꾼다.

임영조 시인이 최근에 펴낸 시집 ‘시인의 모자’(창작과비평사)는 구어체 서정시의 한 진경이다. 문어체가 권위와 정통의 공식 언어라면, 구어체는 그 권위와 정통에 틈을 내며 시를 일상적 삶의 안쪽으로 불러들이는 사적 언어다. 인용한 시의 키워드는 ‘유실물’과 ‘홀씨’처럼 보이지만, 나는 ‘아하!’와 ‘이런!’이라는 구어(의성어)에 주목한다. 이 시는 ‘아하!’라는 각성과 ‘이런!’이라는 자기 확인에 이르는 과정이다.

구어체 시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지 않는다. 임영조의 시에서 구어체는 능청스럽되 산만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되 정곡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구어체는 이야기를 운반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의 구어체는 시적 자아가 세계를 만나는 방식이자 그 결과이다. 그의 구어체는 또 풍부한 음악성을 동반하고 있다. 이미지보다는 리듬을 우선하는 것이다. ‘강물은 몸이 길이다’(‘강가에서 1’)와 같은 직관이나 ‘길 없는 길’을 무심하게 걷는 경지가 풍부한 리듬감에 실려 있다. 시는 그림이기 이전에 노래인 것이다.

이라크 사막의 모래폭풍과 원리가 같다는 황사가 서해를 넘어오는 이 어수선한 봄날,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은 아닌가,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마음 속 빈터에 몰래 심어둔 홀씨’가 있다면, 그것이 살아갈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손아귀를 빠져나간 세월을 봄 강물 위에 펼쳐 놓고 천천히 다시 읽어보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그래서 깜빡 잊고 있던 홀씨 하나 어디 없겠는가.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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