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이웅진/‘뺨 석대’ 맞은들 어떤가요

  • 입력 2003년 2월 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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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요일에도 아내는 어김없이 출근하는 나의 아침을 준비한다. 1년 중 363일 출근, 일중독증 환자 진단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래도 난 할 일 많은 이 순간이 행복하다.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 깊은 절망감을 잘 알기 때문이다.

12년 전이었다. 화장지 외판업, 이동식 도서대여업까지 실패하고 주머니에는 1만원짜리 1장이 달랑 들어 있었다. 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선배가 자기 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나는 전 재산인 1만원을 털어 중고 책상 2개를 구입했다. 바로 ‘선우’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돈이 없으니 발품을 팔기로 작정하고 외상으로 만든 전단지를 돌리며 거리홍보에 나섰다. 대부분은 쓰레기 신세가 되었지만 전단지에는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를 바꿔가려는 나의 야무진 꿈이 담겨 있었다.

▼400번 선보곤 첫 만남과 결혼▼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여직원의 월급조차 줄 수 없어 ‘카드깡’으로 돈을 마련했고 인근 예식장에서 손님을 가장해 ‘도둑 점심’을 먹으며 하루 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일군 사업이기에 사무실 내 책상에 앉은 먼지 하나도 정겹기만 하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지난 12년이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스물 여섯,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녀석이 이상한 일이나 꾸미고 다닌다는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직접 회사를 찾아와 자녀의 결혼을 부탁하는 부모를 만나거나 결혼 후 안부를 묻는 회원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랴’는 생각을 다졌다. 미혼 남녀들에게 고품격 파티문화를 보급하겠다는 나의 포부는 종종 비밀스러운 만남을 원하는 유부남, 유부녀들의 전화 앞에 무너지곤 했다. 물론 지금은 최고의 미혼 엘리트들이 주로 가입하고 있으니 10년도 안 되어 상황이 역전되었다고나 할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 하는 일이라 특별한 인연도 있고 재미난 사연도 많다. 초창기에 가입했던 한 여성은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재혼팀에 다시 가입한 일도 있었다. 6번 이혼하고도 가정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7번째 재혼에 도전했던 한 남성의 집념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뿐인가. 400번 선을 본 남성회원은 결국 처음 만났던 여성과 결혼했으니 먼 길을 돌아 원점으로 온 셈이다.

지난 12년 동안에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통해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갖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여성이 프로포즈하거나 결혼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처가의 입김이 세지면서 장모와 사위 간의 갈등이란 새로운 풍속도 등장했다.

이혼율 급증과 함께 연령층도 내려가 20대 초반의 이혼녀가 재혼팀에 가입하는 일도 생겼다. 속전속결, 애 낳기 전에, 혹은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이혼하는 커플도 적지 않다. 결혼에 대한 반발인지 이혼이 두려워서인지, 사실혼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이왕 시작했으니 이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심이다. 이혼을 줄이는 대안을 모색하고 고향이나 학벌 등에 대한 편견도 고쳐 보려 한다. 이것이 결혼정보회사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8년 만에 현장에 복귀해 회원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현장감이 무뎌지면 업무 관리가 어렵기도 하지만 회원과의 유대야말로 업무개혁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결혼사업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회원에 대한 애정이 ‘사업 뿌리'▼

몇 번의 시도 끝에 곧 해외지사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전 세계 동포를 결혼네트워크로 연결해 폭넓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나의 목표는 결혼을 기업화해 새로운 개념의 사업영역을 개척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선우의 매칭시스템을 수출하고 싶다. 설령 그 목표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회원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이웅진 '좋은 만남 선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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