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개혁과 소비자

  • 입력 2001년 8월 29일 18시 32분


5년 임기 중 3년반을 지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주문은 한마디로 ‘초심(初心)’이다. 초심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취임 당시의 의지와 약속이 그대로 안 지켜지고 있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 시중에서는 “대통령이 왜 저렇게 하지”라는 물음이 많다. 사실 최근 각종 행사나 회의석상에서 보는 대통령의 표정은 무거울 때가 많다. 따지고 보면 국정의 여러 분야에서 뜻대로 풀려 나가는 구석이 별로 없다. 남북관계 4강외교 경제 교육 보건복지 노사문제 등 곳곳에서 꼬이는 일이 많다 보니 대통령의 심중이 착잡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서 일이 꼬이는 이유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서고금을 통해 리더십이란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힘이 붙는 법인데 그것이 전만 못하다는 뜻이다.

▼내부 취약해 리더십 약화▼

어느 정권이건 대권을 잡고 그 집권을 버텨주는 지주(支柱)세력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는 군, 관료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영남세력 3자가 그 역할을 했다. 국민의 정부는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여 노조와 DJP연합 3자의 힘을 모아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국회의 다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한 소수 정권이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민노총, 전교조를 합법화까지 했으나 노조와 현정권의 관계는 집권초기 때 같지 않다. DJP연합이란 것도 많은 기복을 이럭저럭 넘어 오긴 했지만 최근 대선정국을 맞은 JP의 행보와 관련해 흔들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게다가 김중권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당과 청와대 비서진간의 공방은 예삿일이 아니다. 집권세력은 이러한 내부적 취약성이 리더십과 그 권위를 깎아 내리는 한 요인이라는 점을 알고나 있는지. 더 큰 문제는 소수정권이란 사실을 잊었거나, 아니면 그 사실을 무시하려는 오만함에 있다. 노조와는 물론 DJP연합을 유지하려는 일념에서 되풀이하는 무리수가 그 산물이다. 결국 현정권이 심혈을 기울인다는 개혁작업의 부진도 바로 리더십과 국민적 동의가 엇갈리는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왜 그런가.

그 첫 번째 실책은 야당과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정치란 기세싸움이니까 밀리면 안 된다는 획일적 발상에서 싸움하듯이 밀어붙이지는 않았는지. 흔히 “야당이 막무가내로 사사건건 트집잡는데 어떻게 우린들 가만있으란 말인가”라고 하는데 그것은 집권 여당이 할 말은 아니다. 크고 작은 반대와 이견을 추스르고 또 추슬러서 스스로 자임해온 개혁작업을 해나가야 집권세력 아닌가. 그런 말을 한다면 집권 자격이 없다. 개혁 부진을 야당 탓으로만 돌린다면 애당초 개혁 깃발도 내걸지 말았어야 했다.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할 국정의 궁극적인 목표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대통령을 모신 정당’이란 수식어에 몰입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군림하는 식의 여야 관계는 피할 수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도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보다 결정적인 두 번째 실책은 국민과의 관계에 있다. 대부분의 정파나 정치인들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공통적인 실수이긴 하지만 집권 세력으로서는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아직도 국민을 선거 때 표로 환산되는 유권자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한 표라도 더 얻겠다고 뿌려댄 선심행정이 그동안 나라살림을 얼마나 어렵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민은 정치란 상품의 소비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국민은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란 상품의 소비자다. 지금까지의 유권자들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 누가 나를 대신해서 싸워줄 수 있느냐’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느 정당의 어떤 정책이 나의 실생활에 어떤 이득을 줄 것인가’를 더 따진다. 생활정치에 어느 때보다 민감한 정치소비자들에게 초반부터 제2건국이란 거창한 구호를 외쳐댔으니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실생활과 직결된 교육 보건 복지분야의 개혁은 줄곧 갈팡질팡함으로써 소비자들은 기대감을 잃어버렸다. 정치에서 기대감을 주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정치를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결과다. ‘정치 9단’이란 말은 이제 맞지 않는다. 거대한 담론(談論)만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논설실장>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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