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어머니 “마음 상해 쌓지 말고 잘 견뎌 보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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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잊지 못할 말 한마디]


최명란 (시인)
최명란 (시인)
1915년생. 100세.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장수 할머니다. 마트 가는 길에 할머니를 문간에서 만났다. 묻지 않아도 노인정 다녀오는 길이라며 치아 하나 없이 아이처럼 까르르 웃으신다. 마침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아니고 엄마 생각도 많이 나고 해서 마트 같이 가자며 할머니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파트 마당을 걸으면서 할머니께 여쭈었다. “이렇게 얼굴도 예쁘고 정정하고 인품도 좋으시니 힘든 일도 겪지 않고 사신 것 같아요?” 할머니는 “내가 백 살이나 살았는데 어째 아무 일이 없이 살았겠나. 험한 일도 있었고 고비도 있었고 부자로도 살았고 가난하게도 살았고 식모살이도 했고 식모를 부리고도 살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한숨 쉬시더니 “그냥 견디면 돼”라고 했다. 힘들어도 남에게 힘들다 말하지 말고, 그저 혼자 힘들구나 생각하며 견디면 다시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 말씀에 나는 그해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2007년 4월은 나에게도 ‘잔인한 달’이었다. 길이 없는 지리산에서 남편의 투병으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 달이기 때문이다. 큰 짐승의 울음조차 무서운 산의 침묵 속에서 밤낮 밀착해 지병을 돌보며 꼼짝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럴 때 엄마도 아팠다. 그러나 환자를 일상처럼 돌봐야 하는 내 처지 때문에 엄마를 찾아보지 못했다. 곁에서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는 환자를 약 사러 간다는 핑계로 다른 이에게 잠시 부탁했다. 날이 새자마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엄마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산길을 내려왔다. 어머니는 평소 “막내는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가장 짧아서 부모 사랑을 많이 못 받는다. 막내의 울음은 저승까지도 들린다”며 내가 눈물 흘릴 때마다 희나리처럼 앙상한 손으로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병원에 도착하니 언니 오빠 형부들이 엄마 침상을 둘러싸고 나무처럼 서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엄마 머리맡을 막내인 내게 내줬다. 뼈만 남은 엄마가 물도 한 방울 못 마시고 기진맥진해 누워있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그만 차가운 눈물이 엄마 얼굴에 뚝 떨어져버렸다. 눈물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도 소용없었다. 자신의 투병보다 막내사위의 투병에 더 애태우던 엄마는 타들어가는 입술로 “마음 상해 쌓지 말고 잘 견뎌 보거라”고 하셨다. 엄마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겨우겨우 당부를 하시는데 나는 대답은커녕 더 눈물이 났다. 이 말은 엄마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내게 한 마지막 말씀이다.

이렇듯 인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말씀이 견뎌보라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바다의 돛단배에 폭풍이 거침없이 휘몰아칠 때는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파도가 너무 거세어 로프를 던져줄 수도 없고 뛰어들어 구해줄 수도 없다. 구조선이 다가올 수도 없다. 어떤 말도 소용없다. 들리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견디다 보면 비로소 폭풍이 그치고 물살이 고른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100세 할머니와 95세 엄마의 말씀 때문에 더 이상 삶에 저항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유언의 정신이 담긴 엄마의 이 말씀 덕분에 인고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 여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를 살았다. 위안의 말 한마디는 격할 때나 사나울 때나 눈물 흘릴 때나 나긋나긋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가만가만 어루만져 준다.

최명란 (시인)
#최명란#엄마#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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