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켜는 순간 노출… 글로 남아 더 오래 기억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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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SNS 폭력, 물리적 폭력만큼 심각

올해 중학생 2학년인 정모 군은 휴대전화를 켜는 게 두렵다.

“씨○○○, 왜 사냐”, “눈앞에 알짱거리면 한 대씩이다.” 정 군은 지난해 초부터 같은 반 학생들에게서 욕설과 협박에 시달렸다. 학교가 끝나도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카카오톡을 통해 새벽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부터 정 군은 잠시라도 욕설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두는 습관이 생겼다. 지난해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던 정 군은 현재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다.

“SNS 언어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달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SNS에 올라온 글은 보고 싶지 않더라도 휴대전화를 켜는 순간 볼 수밖에 없거든요.”

이유미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학교폭력SOS지원단장은 “SNS가 청소년들의 생활공간이 된 만큼 SNS에서 사이버 폭력이 자주 이뤄진다”며 “지난해 한 해 동안의 상담 건수를 보면 물리적 폭력은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사이버 폭력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사이에서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과거 인터넷 카페에서 주로 벌어지던 사이버 폭력이 이제 SNS로 그 무대를 옮긴 것이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사이버 폭력은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맞으면 멍이라도 남지만 사이버 폭력은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학교 폭력 피해 학생 가운데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들의 피해 장소를 조사한 결과 사이버 공간(53.8%)이 교실, 운동장 등을 제치고 화장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물리적 폭력에 비해 사이버 폭력을 행할 때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점도 문제다. 얼굴을 보면 하기 힘든 욕설도 온라인에서는 쉽게 내뱉기 때문에 더욱 무분별한 욕설을 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지난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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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피해 학생들은 똑같은 욕설도 직접 말로 들었을 때보다 SNS에서 접했을 때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SNS에선 욕설이 글로 남기 때문에 기억 속에 더 오랫동안 각인되기 때문이다. 또 여러 사람이 자신을 향한 악성 글을 본다는 점에서 피해학생이 느끼는 수치심도 더 크다.

이 단장은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사이버 폭력을 당하는 게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게 사이버 폭력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덧붙였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SNS#언어폭력#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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