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15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27일만에 열렸다. 비상계엄 및 탄핵 정국으로 정상 외교가 실종된 가운데 첫 고위급 대면 회담의 물꼬를 튼 것이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확장억제(핵우산), 한미일 안보협력 등 기존 한반도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외교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일단 가라앉을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관세로 한국이 직접 영향권 아래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등 정상 및 고위급 소통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선 한계가 뚜렷했다는 지적이다.
뮌헨안보회의(MSC) 참석차 독일에 출장중인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이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코메르츠방크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외교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2.16 외교부 제공
외교부는 이번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미측이 대한반도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한 동맹의 우려를 고려해 비핵화 명시는 물론, 핵우산 강화 등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유지된 북핵 정책들을 일단 유지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 표현 사용을 회담 전 조율 과정에서 적극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측이) 이 정도면 믿어야 한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확고하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다만 미 국무부는 한미 외교장관 회담 보도자료에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열려 있음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대화 러브콜을 보내왔다. 이에 따라 비핵화 중간단계로서의 핵동결이나 군축협상 등 ‘스몰딜’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중국 견제 메시지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한층 강화됐다. 특히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공동성명엔 “(3국 장관이)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데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은 대만이 유엔 등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한미는 물론 한미일 회담 성명에 이 문구가 채택된 것은 처음이다. 성명엔 “남중국해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수역에서 힘 또는 강압에 의한 어떠한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중국을 견제하는 문구들은 외교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대부분 빠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며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기구에 대해 대만 참여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트럼프 예고한 관세 문제, 정부 입장 전달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이번 회담에서 정부는 한국의 대미 기여도를 늘리기 위한 조선, 액화천연가스(LNG) 등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미 국무부는 회담 자료 앞부분에 “마코 루비오 장관은 조선, 반도체,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려는 노력, 특히 미국 LNG 수출 증가를 환영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트럼프 2기가 노골적으로 동맹 기여 확대와 무역 불균형 해소를 강조해온 만큼 미국의 관심이 높은 협력 분야에 대한 선제적인 의지 표명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에서 정부는 관세 조치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는 회담에서 조태열 장관이 관세 적용 문제에 대해 한미 간 해결 의지를 밝히고 ‘윈-윈’ 해법을 모색하자고 당부했고, 루비오 장관은 “관계부처 간 협의해 나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의 발언은 관세 문제가 국무부가 아닌 상무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 통상당국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관세 조치가 실행되기 전에 회담 가진 것도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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