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12년만에 강등… 한국 등 亞증시 동반 하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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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신용등급 강등]
피치, 최고등급 AAA서 AA+로 하향
“부채 늘고 있고 조정능력도 악화”
美 “시대 뒤처진 데이터 기반” 반박

올 6월 2일 미국 뉴욕 번화가 건물에 설치된 ‘국가 부채 시계’에 미국 부채 규모가 31조4565억 달러(약 4경831조 원)로 표시돼 있다. 뉴욕=신화 뉴시스
올 6월 2일 미국 뉴욕 번화가 건물에 설치된 ‘국가 부채 시계’에 미국 부채 규모가 31조4565억 달러(약 4경831조 원)로 표시돼 있다. 뉴욕=신화 뉴시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을 기존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4경 원을 훌쩍 넘긴 미 부채와 반복되는 정치 리스크를 강등 이유로 들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미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12년 만이다. 이 여파로 2일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피치는 1일 성명에서 “미국은 향후 3년 동안 재정 악화가 예상되는 데다 부채가 늘고 있고, 조정 능력(거버넌스)도 악화되고 있다”며 신용 강등 이유를 밝혔다. 31조 달러(약 4경130조 원)가 넘는 나랏빚과 부채한도 상향을 둘러싸고 매년 반복되는 여야 간 벼랑 끝 대치로 미국의 ‘빚 갚을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낮춘 것이다. 피치는 1994년 이후 29년 동안 미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해 왔다.

이로써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에서 미국을 최고 등급으로 유지하는 곳은 무디스만 남게 됐다. 무디스는 현재 미국에 대해 최고 등급인 Aaa를 부여하고 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미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이 계속 지연되며 연방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하자 미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렸다. 당시 일주일여 동안 미 증시는 15% 폭락했고, 코스피도 17% 떨어졌다.

미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피치 보고서는) 자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라고 깎아내렸고, 커린 잔피에어 미 백악관 대변인은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보다 50.60포인트(1.90%) 하락한 2,616.47에 거래를 마쳤다. 아시아 주요 증시도 대부분 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2.30% 하락한 32,707.69엔에,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89% 내린 3,261.69에 각각 거래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7원 오른 1298.5원에 장을 마감했다.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안전자산 선호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나랏빚-가계부채 늘고 고령화 가속… 한국도 신용등급 안심 못해


한국 신용도 위협하는 ‘3대 요인’
피치, 이르면 내달 신용등급 재평가
정치권, 재정준칙 두고 3년째 갈등
“日도 나랏빚에 韓보다 2등급 낮아져”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면서 7∼11년째(3대 신용평가사 기준) 변동이 없었던 한국 국가신용도 역시 안심할 수 없다는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등급 조정의 이유로 지목된 재정 악화와 정치권의 이전 투구 등은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꼽고 있는 한국의 위험 요인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피치와 S&P는 이르면 9월 한국 신용등급을 다시 평가해 발표할 예정이다.

● 고삐풀린 나랏빚과 가계부채 한국 신용도 위협

2일 정부에 따르면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주요 글로벌 신용평가사 3곳은 2012∼2016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상향 조정했다. 이후 이달까지 등급 조정은 한 차례도 없었다. 현재 무디스와 S&P는 한국을 10개 투자등급 중 3번째로 높은 ‘Aa2’와 ‘AA’로, 피치는 4번째로 높은 등급인 ‘AA―’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피치는 올 3월 한국의 등급을 유지하면서도 앞으로 한국 신용등급의 부정적 요인으로 급격히 상승한 국가채무 비율, 가계부채 상환 문제로 인한 경제·금융 부문 전반의 리스크 확대 등을 꼽았다.

한국의 나랏빚은 5년 새 400조 원 넘게 불었다. 2017년 말 660조2000억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1067조7000억 원으로 407조5000억 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36%에서 49.4%로 상승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수년간의 증가 폭이 지나치게 컸다는 점이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가 한국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가계대출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한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102.2%로 주요 34개국(지역)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가계 빚이 GDP를 넘어선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미국(73.0%), 일본(65.2%), 중국(63.6%) 등 주요국보다 30∼40%포인트가량 높다. 피치는 “한국은 가계부채에서 변동금리 비중이 80%에 달한다”며 “높은 가계부채 부담이 소비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정치권 극한 대립과 고령화도 위험 요인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경제 강국이면서도 한국 대비 2단계 낮은 신용등급(3대 신용평가사 기준)을 받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은 장기간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펴면서 나랏빚이 주요국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아졌다”며 “한국도 나랏빚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가계대출 리스크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제한 양적완화를 내세운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의 국가채무는 이미 1000조 엔(약 9100조 원)을 돌파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유가 재정적자를 둘러싼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었다는 점도 한국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정부도 국가 채무와 재정 적자를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3년째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급격한 고령화 역시 장기적인 위험 요소로 꼽힌다. 무디스는 올 5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2’로 유지하면서도 “고령화가 생산성 향상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까지 떨어졌다.

다만 정부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단기간에 조정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신용평가사들이 정부에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적은 없다”며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고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를 개선하려는 이번 정부의 노력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 신용등급 강등#아시아 증시 주가#동반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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