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 국가안보실-이스라엘 모사드까지 감청 정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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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감청 기밀문건 유출]
감청문건에 우크라 포탄 지원 관련… 韓대통령실 고위관계자 대화 담겨
美정보기관 신호정보로 확보 명시… 美, 유출사실 두달 가까이 파악못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출된 100여 건의 미 정보기관 기밀문서 중 하나. 이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원 방안을 비롯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지도부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개편 반대 시위를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 등 미국이 우방국들의 민감한 국내 정보를 수집한 정황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해당 내용을 부인했다. SNS 캡처
미국 정보기관들이 감청 등을 통해 수집한 기밀 정보가 온라인에 대거 유출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속에 미국 기밀 정보 보안에 구멍이 뚫린 데다 동맹국에 대한 무차별 감청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2013년 전직 미 정보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도·감청 실태를 폭로한 이후 최대 기밀정보 유출 사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 韓 국가안보실 대화 담긴 美 감청 문건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출된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에 대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대화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이문희 전 대통령외교비서관은 지난달 1일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한미 정상 통화에 대해 논의하며 “정부가 미국의 포탄 요청에 응한다면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달 전격 교체됐다.

문건은 “이 전 비서관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 없이는 정상 간 통화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며 “한국은 살상무기 지원 금지 원칙을 위반할 수 없기 때문에 (무기를 지원할) 유일한 방법은 이 원칙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고 했다.

문건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발표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관련 발표가 겹치는 것에 대해 “여론은 이 두 사안을 거래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이 전 비서관에게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탄약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폴란드에 155mm 포탄 33만 발을 판매할 가능성을 제안하자”고 말했다.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 금지 원칙 변경을 검토했으나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등으로 인한 국내 정치적 부담으로 폴란드를 통한 ‘우회 지원’을 논의했다는 내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9일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묻자 “한미 정부가 다양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협의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주긴 어렵다”고 말했다.

문건에는 이 같은 내용이 미 정보기관의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통해 확보됐다고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의 내부 논의에 대해 감청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스라엘 총리에 반기 든 모사드 등
유출된 문건에는 이스라엘, 튀르키예(터키), 아랍에미리트(UAE) 등 동맹국들에 대한 외교적 감청 정보들도 대거 포함됐다.

CIA가 지난달 1일 감청을 통해 작성한 문건에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지도부가 자국 정부를 비난하는 명시적인 행동을 포함해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 개편에 항의할 것을 모사드 관리들과 시민들에게 촉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조치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튀르키예가 러시아 용병 바그너그룹과 무기 지원을 위해 접촉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도 유출됐다.

NYT 등에 따르면 유출된 문건은 100여 건으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미군 지도부 보고를 위해 미 국방부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했다. 이들 문건에는 중앙정보국(CIA)과 NSA, 국가정찰국(NRO), 국무부 정보연구국 등 미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들이 담겼으며 대부분 ‘일급기밀(Top Secret)’ 마크가 찍혀 있었다.

이들 문건은 소셜미디어 ‘디스코드’의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2, 3월 집중적으로 유출됐으며 이달 5일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과 미국 음모론 사이트인 ‘포챈(4chan)’ 등을 통해 확산됐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두 달 가까이 이들 문건의 유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데다 아직 유출된 문건을 모두 삭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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