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푸틴의 핵위협 보며 ‘뭐든 해도 좋다’ 오판할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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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5〉고하라 마사히로 日 도쿄대 명예교수

고하라 마사히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북한 도발과 대만해협 긴장이 겹친다면 올해 동아시아 안보 환경은 극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라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고하라 마사히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북한 도발과 대만해협 긴장이 겹친다면 올해 동아시아 안보 환경은 극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라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북한 도발과 대만해협 긴장이 겹친다면 올해 동아시아 안보 환경은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 러시아의 핵 위협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자극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 고하라 마사히로(小原雅博·68)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21일 도쿄에서 가진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올해 동아시아 정세를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핵 위협이 김 위원장에게 ‘국제법 및 상식과 상관없이 무슨 짓이든 해도 좋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위기가 증폭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고하라 교수는 일본 외무성에서 25년간 근무한 외교관 출신으로, 외교 실무 경력과 국제정치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다.


고하라 교수는 과거사 문제로 진척이 더딘 한일 관계에 대해선 “역사는 중요한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라며 양국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한미일 연계 협력의 보조가 흐트러지고 분열되는 게 북한의 노림수이자 중국에 좋은 것”이라며 한미일 3국 공조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동아시아 정세를 하나의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안전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해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안보 딜레마가 커지면서 동아시아 안보 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다. 군사적 갈등과 안보 문제가 부각되면서 경제의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후퇴할 것이다. 세계적 경기 침체가 이미 곳곳에서 분열과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북한의 도발에 영향을 미칠까.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은 김정은의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에스컬레이션(고조)시키고 있다. 푸틴처럼 국제적 정의나 도의와 상관없이 극단적인 말을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김정은을 자극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도 단거리, 중장거리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며 미사일 역량을 강화하는 시도를 거듭할 것이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긴장, 미중 갈등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로 여기고 있다. 강대국 간 대립과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전략적 지위가 유리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만해협 긴장의 고비는 언제가 될까.

“대만 총통 선거와 미국 대통령 선거가 겹친 2024년으로 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임기(2022∼2027년)의 절반을 지나는 해이기도 하다. 선거를 앞둔 대만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중국은 다양한 형태로 공작을 강화할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3기 체제가 동아시아 안보에 미칠 영향은….

“이례적인 3연임에 중국 내부에서는 이미 불만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백지 시위’가 이를 보여주지 않았나. 시진핑 3기에 들어서면서 권력 기반이 탄탄하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 대해 여러 불만이 있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좋았던 중국 경제가 불확실해졌다. 미국과의 신냉전으로 반도체 등 첨단기술 개발 측면에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시진핑이 대만 문제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마음먹는다면 2024년에 맞을 고비 전에 올해부터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대만해협 긴장이 높아지고 북한까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다면 동아시아 안보 상황은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중국의 위협에 일본은 방위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전례 없이 엄중해지고 있다. 이제까지의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어떻게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일본의 안전을 확보해 나갈 것인가가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다.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가능) 범위에서 허용되는 반격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억지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무장 강화가 동아시아 군비 경쟁 격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방위비를 증액하고 있다. 중국의 국방력도 커졌다. 안보 환경이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일본도 나름대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정치적 책임 측면에서 당연하다.”

―한국 일각에서도 일본의 군사력 고조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존재한다.

“한일 양국이 진정으로 화해하기 위해 역사 문제를 극복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안보 측면에서 ‘일본이 한국의 위협’이라는 주장에 많은 일본인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대와 유엔 결의에도 북한은 핵·미사일을 강화해 나가면서 주변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를 공통의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럴 때 한미일의 보조가 흐트러지고 분열되는 것이야말로 북한이 원하는 바이고 중국에 좋은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함께 모여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협의하는 게 서로의 국익과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

―한일, 한미일 협력을 국제정치의 틀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인가.

“국제사회는 상대가 힘을 늘릴 때 그에 걸맞은 힘을 보유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한국과 일본 각각이 단독으로 (힘을) 가질 수 없다면 한미일이 협력해 자신을 지킬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이 극단적인 말을 하고 미사일과 핵을 겨누며 무언가를 요구할 때 거기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는 1998년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측면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굉장히 훌륭하다. 양국 정부와 국민이 다시 한 번 이 선언을 상기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역사는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다. 과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불행한 일이다. 한일 양국이 협력함으로써 더 평화롭고 번영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를 쌓아야 하고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과거를 잊지 않는 가운데,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을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고하라 마사히로 日도쿄대 명예교수#김정은#동아시아 정세#대만해협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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