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한 남부우크라 ‘식민지化’… 레닌 동상 세우고 루블화 강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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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언론 “옛 소련 국기 게양… 법정화폐 바꾸고 사상교육 나서
성인남성들 강제 징집될까 우려”… 농기계-농작물-건축자재 약탈도
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시간문제”… 하원, ‘바이든에 파병 전권’ 상정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카호우카에 러시아혁명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2014년 철거된 것과 같은 동상”이라고 전했다(왼쪽 사진). 1일 남부 
자포리자주 멜리토폴 중앙광장에 옛 소련 국기를 바탕으로 만든 ‘러시아군 승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사진 출처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 트위터·멜리토폴=AP 뉴시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카호우카에 러시아혁명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2014년 철거된 것과 같은 동상”이라고 전했다(왼쪽 사진). 1일 남부 자포리자주 멜리토폴 중앙광장에 옛 소련 국기를 바탕으로 만든 ‘러시아군 승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사진 출처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 트위터·멜리토폴=AP 뉴시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곳곳에서 화폐, 행정체계, 상징물이 러시아 것으로 교체되는 등 ‘우크라이나 민족성 말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1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CNN방송 등이 전했다. 점령지에는 러시아혁명을 일으킨 레닌 동상이 다시 등장했다. 미국은 국방·국무장관, 하원의장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 “루블 쓰게 하고 러 사상교육”
WSJ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지난달 남부 헤르손 중심부에 레닌 동상을 설치하고 옛 소련 국기를 게양했다. 주민들은 “당신들은 침략군이고 파시스트”라고 항의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관계가 좋았을 때 우크라이나 전역에는 레닌 동상이 약 2500개 있었으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반(反)러시아 여론이 고조돼 대부분 철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소련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러시아는 또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등에 민군합동정부를 설치하고 일방적으로 화폐, 공문서 양식 등을 교체했다. 헤르손과 멜리토폴에서는 이달부터 법정화폐가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우냐에서 러시아 루블화로 바뀌었다. 항구도시 베르s스크 결혼식장에서는 신혼부부에게 ‘러시아연방 결혼증명서’가 발급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일 점령지 학교들에 휴교령을 내렸지만 러시아군은 러시아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해 강제로 사상교육을 할 예정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러시아군은 점령지 통신 케이블을 자르고 통신기지국을 폐쇄해 휴대전화와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했다. 전쟁 관련 뉴스나 정보 접근을 막으려는 것이다. WSJ는 “성인 남성은 러시아군에 강제 징집돼 동족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농기계, 곡물, 건축자재 등을 조직적으로 약탈해가고 있다고 CNN이 1일 전했다. 멜리토폴 농기계 판매점은 러시아군에 수확기, 트랙터, 파종기를 비롯한 농기계 27대, 총 500만 달러(약 63억 원)어치를 강탈당했다. 다만 이 농기계들에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원격 잠금장치가 달려 있어 러시아군이 시동을 걸지 못해 전문가를 수소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최후 항전지 대피소, 산소마저 부족”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민간인들은 2일 참혹한 현장 상황을 증언했다. 두 달 넘게 러시아군에게 포위된 채 공격당하는 제철소 안에서는 우크라이나 병사와 민간인 등 2500명 이상이 최후 항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제철소에서 탈출한 나탈리야 우스마노바 씨는 “러시아군이 폭격할 때마다 벙커가 무너질까 봐 무서웠다”며 “지하 대피소에는 산소가 부족하다. 피란민들은 상상도 못 할 공포에 질려 있다”고 말했다. 제철소에 있는 부상자 600여 명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다친 부위에 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30일 키이우를 방문한 민주당 소속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이 검토되고 있다.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CNN에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군사·재정 지원을 재확인한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하원은 1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무력사용권한(AUMF)’을 부여하는 결의안을 상정했다.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수 있도록 전권을 부여하는 결의안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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