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왜 당신이 거기서 나와?’…리 장군 동상에 얽힌 미스터리[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09-21 14:00수정 2021-09-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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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없었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식이 열렸습니다. 정부관계자, 학자, 일반 시민 등 수백 명이 몰려들어 철거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군중이 그 자리에 모인 것은 리 장군 동상에 대한 작별 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과 관련된 보물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보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 기회를 놓친 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암살된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시신 사진. 현존하는 유일한 시신 사진으로 링컨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링컨기념관 홈페이지

리 장군 동상에서 링컨 전 대통령과 관련된 보물을 찾는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된지 않습니다. 이들이 보고 싶어 했던 ‘링컨 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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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렇습니다. 역사 마니아들의 관심을 끈 것은 리 장군 동상 밑에 있다고 알려진 타임캡슐이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동상 밑에 가로세로 35cm, 높이 20cm 정도의 사각형 청동 박스가 묻혀 있습니다.

미국에는 남북전쟁 때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연합군의 총사령관 리 장군의 용병술과 인품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부의 웬만한 도시에 가면 어렵지 않게 리 장군의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불기 시작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반대 분위기와 맞물려 그의 동상이 여러 도시에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리치먼드의 리 장군 동상 철거가 화제가 된 것은 이곳이 남부군의 수도였고 그의 고향이 이곳 부근이라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동상이 매우 크고 정교하게 제작됐다는 점도 관심을 끈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미국은 동상을 개인 우상화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크게 짓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 동상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최근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 있는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이 철거되는 모습. 아트뉴스페이퍼

수많은 전쟁 무용담을 남긴 리 장군은 187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곧바로 리 장군 추모위원회가 조직돼 리치먼드에 동상을 건립하는 계획이 진행됐습니다. 설계도가 완성되자 위원회 실무자가 프랑스로 건너가 제작 계약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동상은 맨 위쪽에 리 장군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이 있습니다. 프랑스 조각가 앙토냉 메르시에의 작품입니다. 프랑스에 대한 미국의 예술적 열등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마상만 4미터가 넘습니다. 그 아래쪽에 남북 방향으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이 조각된 화강암 받침대가 있습니다. 그 아래쪽에 초석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동상의 총 길이는 18미터에 달합니다. 이 동상을 단순히 “조각상(statue)”이 아니라 “건축물(monument)”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최근에 열린 동상 철거식은 기마상을 받침대에서 분리시키는 행사였습니다. 기마상은 세 등분으로 쪼개져 분쇄될 예정입니다.

지난해 블랙라이브스매터(BLM·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벌어지기 전의 리 장군 동상. 시위 후 온갖 낙서로 더렵혀졌다. 위키피디아

동상이 완전체의 형태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90년 5월이었습니다. 당시 12톤 무게의 기마상을 프랑스로부터 배로 실어와 받침대 위에 조립시켰습니다. 받침대와 초석은 그보다 3년 전인 1887년 설치됐습니다.

1887년 10월 27일 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를 보면 받침대 및 초석 헌정식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초석 위에 받침대를 얹고 리 장군의 이름을 새겨 헌정하는 행사였습니다. 당시 매우 큰 인파인 2만 5000여명이 몰렸습니다. 옆 동네인 메릴랜드 주민 450여명이 구경하러 올 정도였습니다.

타임캡슐은 초석 내부에 공간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타임캡슐을 묻었습니다. 물론 “타임캡슐”은 현대인들이 만든 용어입니다. 당시에는 “연합군 박스(Confederate box)” “전쟁 박스(war box)” 등으로 불렸습니다. 헌정식에서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리치먼드 타임스를 보면 37명의 개인과 기관으로부터 60점의 물품을 기증 받아 타임캡슐에 넣었습니다. 남북전쟁(1861~65년)을 끝내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던 만큼 전쟁을 추억하는 기념품들이 많았습니다. 군복, 단추, 총알, 전쟁지도 등이었습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물건들도 있었습니다. 조개껍질을 넣은 사람도 있고,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으로 유명한 삭스 앤 컴퍼니는 자사의 광고전단을 기증했습니다.

버지니아커먼웰스대(VCU)가 소장하고 있는 1890년 5월 리 장군 동상 완공식 때 축제 분위기 모습. VCU

가장 독특한 물건을 넣은 사람은 패티 캘리스 리크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링컨이 관에 누워있는 사진(picture of Lincoln lying in his coffin)”을 기증했습니다. 남군의 영웅 리 장군을 기리는 타임캡슐에 북군을 지지했던 대통령의 시신 사진을 넣은 것이라 눈길이 안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물건들에 대해서는 형태나 넣은 이유 등의 설명이 있는 반면 이 기증품은 한 줄의 문구 외에는 아무런 기록도 없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든 사진의 가치는 매우 큽니다. 링컨 시신 사진은 단 한 점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링컨 시신 사진은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의 링컨기념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경매 전문가들은 두 번째 링컨 시신 사진이라면 30만 달러(3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링컨 보물”이라고 불릴 만 하죠.

패티 리크라는 여성이 “링컨이 관 속에 누워있는 사진”을 타임캡슐에 넣었다는 1887년 10월 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 문구. 리치먼드 매거진

링컨 전 대통령은 1865년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남군 지지자였던 존 윌크스 부스라는 배우에 의해 암살됐습니다. 제16대 대통령이었던 그는 암살된 최초의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가 암살되자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정치적 고향인 스프링필드에 묻히기 전에 3주 동안 국민들이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주요 도시들을 도는 순회 투어가 마련됐습니다.

1865년 4월 24일 링컨 시신이 뉴욕 시청 중앙홀에 도착했습니다. 12만 명의 조문객이 몰렸습니다. 조문객을 받기 전 사진사가 관 속의 링컨 시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사진입니다.

당시는 방부처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회 투어 중인 링컨의 시신은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부인인 메리 토드 여사는 온전치 못한 남편의 시신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뉴욕 시청에서 찍은 시신 사진도 없애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메리 토드 여사의 부탁을 받은 에드윈 스탠턴 전쟁장관은 단 한 장 있는 대통령의 시신 사진을 차마 없앨 수 없었습니다. 사진은 스탠턴의 아들 앞으로 남겨졌고,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여러 서류더미 속에 섞인 채로 링컨기념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가 1952년 어느 날 아이오와에서 기념관에 구경 온 14세 소년이 먼지 쌓인 서류철 속에서 링컨 시신 사진을 찾아내게 됩니다. 로널드 리트벨드라는 아이오와 촌뜨기 소년이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사연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는 스토리입니다.

리 장군 동상 철거 때 타임캡슐을 찾기 위해 12시간 넘게 대공사를 벌인 발굴위원회 인력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다. CNN

두 번째 링컨 시신 사진이 100년 넘게 간직돼온 타임캡슐 속에서 발견된다면 첫 번째 사진 못지않은 극적인 사연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빨리 사진을 보고 싶어서 리 장군 동상을 허물고 타임캡슐을 캐낼 날만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설사 그림이라고 해도 그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리 장군 동상 철거 당일 제임스타운발굴위원회는 12시간 동안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초석 부근에 구멍을 내고 내부를 조사했습니다. 동상 철거보다 타임캡슐 찾기가 이날의 ‘핫 이벤트’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위원회는 “있어야 할 곳에 없어서 놀랐다”며 “단지 과거에 대한 로맨틱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역사와 과학, 고고학적 자료들을 동원해 타임캡슐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실망감을 전했습니다. 이어 “미스터리는 해결되지 못했지만 할 수 없다. 역사는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타임캡슐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동상의 구조상 도굴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1887년 헌정식 때 마지막 순간에 묻기를 포기한 것일까요. 애초에 링컨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높았던 리치먼드에 사는 여성은 왜 그의 시신 사진을 타임캡슐에 넣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또 그녀가 넣은 것은 정말로 링컨 시신 사진이었을까요. 역사는 쉽고 간단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비밀을 간직한 채로 흘러갑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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