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탈출 돕던 여군, 예비아빠…카불공항서 희생된 미군 안타까운 사연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9일 15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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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 테러로 숨진 미군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알려지고 있다. 미 국방부는 28일(현지 시간) 이들 13명의 신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희생된 미군들의 평균 나이는 불과 22세에 불과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해병대 정비 담당이었던 니콜 지(23)는 테러로 사망하기 약 일주일 전 인스타그램에 카불 공항에서 한 아기를 안고 돌봐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올렸다. 그리고는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고 썼다. 그의 SNS 계정에는 이밖에도 공항에서 사람들을 비행기로 호송하는 장면, 병장 승진 소식에 기뻐하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지의 아버지인 리처드 헤레라 씨는 워싱턴포스트(WP)에 “딸이 죽기 며칠 전에 아프간에서 문자를 보내왔다”며 “자신이 탈레반에게서 탈출하려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출신인 지 병장은 항공관제사가 되고 싶었지만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서 정비기사로 직종을 바꿨다고 한다. 헤레라 씨는 “딸이 아프간의 최전방에 있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 했다”며 “딸은 스스로가 삶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딸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지의 가장 친한 동료였던 멀로리 해리슨은 페이스북에 “그녀의 차가 아직 주차장에 있다”면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내 사람, 내 영원한 자매, 나의 다른 반쪽…”이라며 울먹였다.

또 다른 해병 희생자인 릴리 맥컬럼(20)은 아내의 뱃속에 약 3주 이내에 태어날 아기가 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맥컬럼은 훌륭한 아버지가 될 참이었다”며 “그는 해병이 되기 전부터 해병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맥컬럼은 와이오밍주 출신으로 2살 때부터 군대에 가고 싶어 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그는 18세가 되자마자 입대 지원서를 냈다. 해병에서 제대하면 역사 교사나 레슬링 코치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해병 카림 니코이(20)는 2001년 9·11 테러 및 아프간 전쟁이 발생한 해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술에 능했던 니코이는 해병을 평생 직업으로 삼으려 했다. 그의 아버지는 카불 테러가 나자 아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TV 뉴스를 보던 중 집으로 찾아 온 세 명의 해병대원들에게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아버지는 “아들은 전쟁이 시작한 해에 태어났고 전쟁이 끝나는 해에 생을 마쳤다”고 한탄했다. 그는 숨지기 불과 수 시간 전에도 자신이 아프간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동영상을 가족들에 보냈다.

해군 의무병이었던 막스 소비아크(22)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미소 짓는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그의 집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기(弔旗)가 걸려져 있다. 가족들은 성명에서 “막스는 가족과 공동체를 사랑하고 미 해군 복무를 자랑스러워하던 훌륭한 아들이었다”고 밝혔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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