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왜 속국이 필요한가? 오랑캐 존재해야 ‘통치 정당성’ 확보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입력 2021-06-13 10:20수정 2021-06-1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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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21세기 중국]
21세기판 대일통 ‘일대일로’… 반성 없는 역사 재현

3월 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소수민족 대표들. [신화=뉴시스]
근대 이후 중국 지식인과 지배층은 늘 위기감에 시달렸다. 근대 국가?·?국민 만들기에 실패하면 서세동점(西勢東漸) 물결에 잠식당한다는 두려움이었다. 량치차오(梁啓超) 같은 사상가가 애국의식 있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이유다. 천하에서 국가로, 백성에서 국민으로 변화를 강조하고자 등장한 개념이 바로 신민(新民)이다. 새로운 민(民), 즉 근대국가의 국민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회진화론과도 통하는 위기의 패러다임은 중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중국 이해 키워드 ‘정치’ ‘천하’

청나라는 서남부 · 서북부 이민족을 각각 다른 체제로 통치했다.
다만 근대성을 쫓은 중국에서 성공한 민주적 정치체제는 없었다. 근대에도 중국 지배자는 왕조시대의 카리스마적 ‘역사 법칙’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여기서 지배의 정당성은 바로 ‘대일통(大一統)’을 기반으로 하는 ‘제국적 중화(Imperial China)’를 달성해 이뤄진다. 근대에 접어든 중국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하면서 국민국가의 형태를 띠면서도 전근대 제국의 성격을 지닌 이른바 ‘제국적 국민국가’를 만들었다. 중국에서 제국의 전통은 2000년 시공을 관통하는 특이한 구조와 논리를 지닌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중국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국의 두 지식인을 꼽자면 존 페어뱅크(John K. Fairbank, 1907~1991) 하버드대 교수와 조지프 레벤슨(Joseph R. Levenson, 1920~1949) UC버클리 교수다. 각각 “중국에서 정치는 문화이고 문화는 곧 정치다. 따라서 중국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이라는 세계는 권력체로서 국가와 달리 ‘천하’, 즉 하나의 가치체로 인식됐다”는 것이 두 석학의 핵심 주장이다.

중화제국 정치 시스템이 2000년 넘게 면면히 이어진 점을 감안하면 문화라는 키워드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란 무엇인가” “중국은 왜 그런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는 데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근대 정치·국가이론으로는 전통시대 중국뿐 아니라, 오늘날 중국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천하는 역사지리적 개념인 동시에 국가라는 개념을 견제하는 가치이기도 했다. 천하는 주(周)나라 봉건제도와 진(秦), 한(漢)나라 이후 제국의 통합적 메커니즘이었다. 동시에 도덕적 가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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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의 굴기를 설명하는 틀로서 사회진화론이나 사회주의 경험보다 중요한 것이 중국 전통 사회의 영향력이다. 장기(long term)적 시각에서 중국사를 관찰하면 경로 의존성과 과거로 복원력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화제국의 다민족 질서다. 중화는 어떻게 안팎의 이민족과 관계 맺었고 그 사상적 근거는 무엇일까.

1975년 후베이성에서 ‘속방’(屬邦: 예속된 나라)이라고 적힌 진나라 시기 죽간(竹簡: 대나무로 만든 기록매체)이 발견됐다. 중국 최초 통일국가 진나라가 다민족 국가체제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이다. 진나라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였으나 주변 이민족 집단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자치를 허용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중국 역대 왕조의 특징이 진나라 때 만들어진 셈이다. 진 이후 왕조도 비슷했다. ‘사기열전’에 따르면 진을 이은 한나라는 건국 초기 남월(南越), 동월(東越), 서남이(西南夷), 조선(朝鮮) 등의 나라를 ‘외신(外臣)’이라 칭하고 그 지배자를 왕으로 봉했다. 중국 왕조가 신하라고 칭하긴 했지만 이들 나라는 독립국이었다. 외신보다 중국에 대한 예속성이 강한 지역은 ‘내속(內屬)’이라고 칭했다. 중국-내속국-외신국으로 이어지는 중화제국 시스템의 3중 구조가 한나라 때 정비됐다. 문헌을 통해 확인되는 중화제국 최초의 조공 질서다.

삼중 구조의 제국

대일통(大一統)이라는 정통성만 확보하면 이민족도 중화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사진은 18세기 청나라 만주족 전사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무제(武帝) 이후 한나라는 강적 흉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흉노와 싸워 승리하는 과정에서 서역의 약 50개 나라가 외신국이 됐다. 중화제국의 힘이 강해지면서 외신국은 내속국이 되고 외부에 새로운 외신국도 생겼다. 이는 중국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나라뿐 아니라 당나라, 명나라 등 훗날 중화제국도 이 같은 제국 질서를 유지했다. 이처럼 한인(漢人)이 지배한 왕조는 △일원적 천하 △삼중 구조(중국-내속국-외신국) △주변의 사이(四夷) 세 가지 요소를 핵심으로 다중적 제국 구조를 지향했다.

이민족이 지배한 왕조는 달랐다. 정통 중화왕조를 자처하면서도 자신들의 민족적 특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중화라는 통합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정치적 생존을 위해 자기 민족의 근거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한인과 비(非)한인 유목민족을 서로 다른 시스템으로 통치하기도 했다. 한인 왕조의 다중적 구조와 달리 다원적 제국을 지향한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비한인 왕조는 5호16국 시대(4~5세기)부터 여럿 있었지만, 중국 전역을 지배한 것은 몽골인의 원나라와 만주인의 청나라였다. 이 중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가진 왕조다(지도 참조). 옹정제(雍正帝)는 청나라가 중국사 최대 판도를 확보해 지배의 정당성을 증명했다고 봤다. 광활한 영토를 확보한 청은 이민족을 다원적으로 통치했다. 서남지역의 경우 ‘개토귀류(改土歸流)’의 기치 아래 기존 간접통치에서 직접통치로 이행됐다. 현지 유력자 토관(土官) 대신 중앙에서 파견한 유관(流官)이 다스리는 방식이다. 문화적으로도 중국화를 지향했다.

반면 서북지역의 몽골, 티베트, 신강은 번부(藩部)라고 칭하며 달리 다스렸다. 이 지역 소수민족을 간접통치하면서 고유 풍속을 고치지 않고 현지 전통을 유지시키려 했다. 청조는 몽골지역에선 야삭(몽골의 기본 법률)제도를 유지했고 티베트에선 달라이 라마를 우두머리로 하는 정교일치 사회를 보전했다. 신강에서는 ‘베쿠’ 등 현지 유력자를 통해 유화적으로 통치했다. 청조의 소수민족 지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소수민족을 방목적(放牧的)으로 통치했다고 평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서양 제국주의 이전부터 제국주의적으로 다스렸다고 보는 이도 있다.

왜 청나라는 이민족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치했을까. 전근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중국에서 대일통, 즉 천하통일은 중요한 지배의 정당성이다. 여기서 천하통일은 단지 중화 혹은 중국만 통일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부 사이(四夷)가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가령 한나라 때 유학자 가의(賈誼)는 “천자는 천하의 머리, 만이(蠻夷)는 천하의 다리”라고 말했다. 중화와 이적(夷狄)이 상하관계를 맺으며 ‘화이일체’를 이룬다는 의미다. 통치의 정당성만 확보하면 이민족도 중화제국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중화제국은 곧 중화왕조였지만, 중화왕조가 모두 중화제국은 아니었다. 중화제국과 중화왕조의 차이는 주변 ‘오랑캐’를 세력 범위로 끌어들였는지 여부다. 한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천명(天命)을 받아 대일통을 이룬 왕조가 곧 정통 중화왕조라는 정치 이념을 정립했다. 역설적으로 중국 문화가 이민족 문화를 좀 더 유연하게 포섭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했다.

천하통일이 정당성

21세기 중국의 대일통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대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라고 할 수 있다. 일대일로가 대외 팽창 시도라고 의심받는 것은 지난 대일통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21세기는 지배·차별보다 주변국과 대등한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반성 없이 대일통의 역사를 재현해서는 곤란하다.

조경란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중국현대사상 · 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 ·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 신좌파·자유주의 · 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 전통 · 근대 · 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93호에 실렸습니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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