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폼페이오 방북 취소, 北 김영철의 ‘비밀 편지’ 때문”…무슨 내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8일 14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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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한 것은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보낸 ‘적대적 비밀 편지(belligerent secret letter)’ 때문이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굳은 의지를 보이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함께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수 주 내 승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P의 외교·안보 담당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이날 ‘트럼프는 왜 폼페이오의 방북을 취소했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방북 취소 발표 직전인 24일 오전 폼페이오 장관이 김 부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사실을 2명의 행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곧바로 백악관으로 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편지를 보여줬고,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전날 발표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로긴은 편지의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의 방북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취소 결정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적대적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로긴의 칼럼에 따르면 이 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대한 답신 성격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결국 김 부장의 편지에는 비핵화 진전 요구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가 담겼다는 해석이다. 지난달 초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이후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종전선언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비핵화 신고요, 검증이요 하는 것은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한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북한의 선 비핵화 조치 없이 종전선언은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는데, 북한의 동시적 조치 요구와 결국 충돌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편지 전달 경로에 대해 로긴은 “익명의 고위 관계자들은 편지 전달 경로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북한은 뉴욕 채널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통해 최근 미국 정부와의 소통을 늘려왔다”고 썼다.

로긴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해법을 강조해 온 폼페이오 장관 대신 강력한 대북압박을 주장해 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편에 서게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칼럼에 따르면 익명의 미 고위 관료는 “대통령이 그것(북한과의 외교)이 끝났다고 인정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면서도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볼턴은 트럼프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인정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그들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대면 협상에서 어떤 양보라도 할 경우 미국이 약하다는 신호로 비쳐질 수 있다”고 우려해 왔으며,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종전선언이 한반도 군사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과 달리 폼페이오 장관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평화협정에 못 미친다”며 협상에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 협상에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수 주 내에 북한은 물론 한국 정부와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발표할 수 있다고 로긴은 전망했다.

로긴은 문재인 정부가 백악관의 의사와 무관하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독자적 행동을 하려는 데 대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미 회담에 관여해 온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최근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의 대니얼 스나이더에게 “한국은 더 이상 우리와 발맞춰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 한다”며 “한국 정부와 함께하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고 로긴은 전했다.

다만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하는 문제 등으로 촉발된 한미 간 물밑 갈등 기류는 봉합 국면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의 다른 소식통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 취소 이전까지 진행돼 온 남북 관계 개선 조치들과 관련해 한미 간에 오해가 생긴 부분이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양국 정부 최고위층 간 소통이 더 긴밀해지고 있다”며 “9월로 합의된 남북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놓고도 한미 간에 다양한 채널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려는 우리 정부 입장을 존중하고, 우리 정부도 비핵화 진전 상황을 고려하면서 탄력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9월 방북 여부를 지켜본 뒤 폼페이오 장관의 재방북 추진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정상회담 일정 및 의제도 시 주석의 방북 변수를 검토하면서 한미가 조율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외교 수장도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둔 외교적 노력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두 장관은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목표를 재확인하고 긴밀한 조율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면서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압박이 유지돼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또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전략 변경을 의미하느냐’는 언론 질의에 “우리 목표는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대로 FFVD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과 북한은 최근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했고 우리는 이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여전히 확신한다”고 답변했다. 북한이 최근 비핵화 약속을 재확인했고, 추가 협상을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하면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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