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이번엔 거래의 본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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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게임의 고수’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고작) 이걸 위해 그렇게 대대적인 선전을 한 거야? (늘 자랑하던) ‘거래의 기술’은 어디 갔지? 이게 다인가?’ 지난해 영국 BBC의 ‘화제의 방송사고’로 스타가 됐던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국제협약을 탈퇴하며, ‘파투’(화투에서 판이 무효가 되는 것)도 불사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치밀한 포석(布石)에 ‘말린(?)’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 게임의 고수로서 최후의 순익을 즐기려는 것일까.

○ 사업가 출신의 거래 본능

트럼프 대통령의 잘 알려진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는 사업가로서의 거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한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는 점과 ‘을’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5000달러면 살 수 있던 가정집이 30만 달러로 오르더니 나중에는 100만 달러까지 간 것.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투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합법화 전에 사면 큰 차익을 벌 수 있지만 만약 안 될 경우 물거품이 되기 때문. 카지노는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이기 때문에 돈을 더 주더라도 합법화가 된 후 입지가 좋은 곳을 골라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77년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한 후 3년이 더 지난 1980년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다. 트럼프보다 먼저 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이 공사 지연, 공사비 부족,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거부 등의 어려움을 충분히 본 뒤였다.

호텔 공사도 서두르지 않았다. 통상 다른 업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호텔 공사와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절차를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확실하게 카지노 영업 허가를 받은 뒤 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만약 인허가가 지나치게 늦어지면 땅을 팔고 사업을 접겠다는 방침으로 협상에 임했다. 일단 호텔 공사를 시작하면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에 카지노위원회가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경우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끌려다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코가 꿰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한 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적이고, 불확실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는 게 국제 정세인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까지 명기할 경우 당장은 찬사를 받겠지만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과정이 명시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한 번에 다 털어먹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후에는 차질이 생길 때마다 비판만 들어야 하는 반면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표를 명기하지 않으면 향후 성과가 나올 때마다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 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11월 선거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 방’에 털어먹기보다는 성과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 명분보다는 이익

대표적인 게임 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경기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0억 달러 추가 관세 부과를 지시하고 8, 9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보이콧하는 등 다른 나라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치킨게임 전술을 자주 써왔다.

물론 그 기저엔 명분이나 고상한 가치가 아닌 ‘머니’가 깔려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적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냈다. 북-미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도 돈을 내고 있지만 100%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정치인들이 비록 속마음엔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둘러 말하거나 다른 비유적 수사로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나라한 화법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외교안보의 관점이 아닌 사업과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종수 교수는 “핵이 당면한 문제인 우리에게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한 해체 프로세스가 우선이지만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큰 고려 사항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꿰뚫은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라는 선물을 안겼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자랑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CVID를 명기하기보다는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을 하나하나 이행하면 이를 비핵화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포장해 성과를 낸 것처럼 알리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 게임은 계속된다

트럼프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이다. ‘허가’를 받아내고 ‘돈’을 버는 게 부동산 개발의 목적이다. 하지만 사적 재화를 다루는 비즈니스와 공적 재화를 다루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 영역은 경제적 이익 외에 고려해야 할 가치가 많다”며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게임의 승리자가 될지를 놓고도 관측이 엇갈린다. 이한영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외교 분야의 경우 극단적으로 막장까지 갔을 때 겪을 파국이 전쟁”이라며 “파국의 상황이 (경제 분야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양측이 협상에 더 조심스럽게 임하게 되고, 그래서 더 좋은 협상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업을 할 때보다 덜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또 이번 회담은 순차게임이라 아직은 결론 내리기가 이르다”고 말했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트럼프가 마치 양보처럼 보이는 통 큰 협상전략을 쓴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예전처럼 잔재주를 부리면 반격 전략으로 거칠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정은 일가가 과거처럼 미국을 상대로 장난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른바 참수작전 등으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그러나 종신 집권자이자 국가 오너인 김 위원장으로선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자기 나름대로의 장기적인 스케줄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이설 기자
#트럼프#북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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