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사태 불똥 튄 중동의 ‘아이비리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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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명문대 유치한 교육특구… 봉쇄 장기화땐 문닫을 위기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이슬람권 주요국들의 단교 조치로 고립된 카타르가 식량과 생필품 부족뿐 아니라 ‘교육 붕괴’ 사태를 겪을 위기에 처했다. 장기화될 경우 카타르 정부가 천연가스 판매를 통해 얻은 막대한 ‘가스머니’로 조성한 교육특구인 ‘에듀케이션시티’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우려된다.

12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에듀케이션시티에 캠퍼스를 설립한 미국 대학들은 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비상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당장 철수를 검토하는 대학은 없지만 현 사태가 장기화돼 구성원들의 안전과 학교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면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에듀케이션시티는 글로벌 명문대의 앞선 교육을 중동에 그대로 수입해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된 대규모 대학교육 프로젝트. 미국과 유럽 명문대들의 간판 전공학과 분교를 대거 유치해 ‘중동의 아이비리그’로도 불린다. 1998년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의 미술·디자인 전공이 처음 문을 연 뒤 코넬대 의대, 조지타운대 외교학과, 노스웨스턴대 저널리즘스쿨, 카네기멜런대 경영학과와 컴퓨터학과, 텍사스A&M대 화학·기계·전기공학과 등이 에듀케이션시티에 캠퍼스를 조성했다. 유럽 대학 중에는 프랑스 파리고등상업학교와 영국 런던대(UCL)가 대학원 위주의 과정을 운영 중이다.

학교 시설과 운영비용의 대부분을 카타르 정부가 부담하고, 교육과 연구의 자유도 철저히 보장한다. 에듀케이션시티 내 대학들이 단기간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또 중동 지역의 우수 학생과 교수 유치에도 성공적이었다. 카타르뿐 아니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UAE 같은 주변국 학생들이 에듀케이션시티로 몰려들었다.

특히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으로 유학 가는 게 어려웠던 중동의 우수 여성 인력들에게 에듀케이션시티는 ‘교육 오아시스’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카타르가 주변국들의 압력에 못 이겨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개혁·개방 조치들을 포기할 경우 에듀케이션시티의 기능도 크게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자유로운 왕래가 어려워지고, 다양한 학생 유치와 교육·연구의 자유 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에듀케이션시티는 허울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조지타운대 외교학과 클라이드 윌콕스 교수는 “모두가 현 사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며 “(단교 사태가) 에듀케이션시티 내 학문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카타르#중동#교육#식량#생필품#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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