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엔짜리 오염수 저장탱크 1000개, 근무자들 육중한 전면방호복은 벗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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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원전 유출사고 6년… 방사능오염 복구 현장을 가다

현재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의 95%에서는 안전조끼와 마스크, 안경 등의 간단한 보호장구만 착용하면 돌아다닐 수 
있다. 사고가 난 원전 1호기에서 80m 떨어진 지점에서 도쿄전력 직원이 한국 기자들에게 폐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현재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의 95%에서는 안전조끼와 마스크, 안경 등의 간단한 보호장구만 착용하면 돌아다닐 수 있다. 사고가 난 원전 1호기에서 80m 떨어진 지점에서 도쿄전력 직원이 한국 기자들에게 폐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후쿠시마=공동취재단

9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현장.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에 이은 원전 수소 폭발 당시 충격으로 철근이 앙상하게 드러난 1호기에서 80m 거리인 고지대에 올라가자 개인 선량계에서 휘파람소리 같은 경고음이 울렸다.

현장 근처에 설치된 로봇 선량계는 시간당 150μSv(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켰다. 5m만 뒤로 물러서도 수치가 3분의 1로 줄었다. 오카무라 유이치(岡村祐一) 대외 커뮤니케이션 부장은 이 수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가 끝난 뒤 각자가 가진 선량계에 기록된 피폭량은 20∼30μSv.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잠깐씩 노출된 결과다. “치과에서 X선 사진 두 장 찍은 양보다 적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1∼4호기가 늘어선 부지 면적의 절반에는 1000개 안팎의 오염수 탱크가 들어서 있었다. 현재까지 저장된 총 오염수량은 99만 t. 이를 증발, 매설, 화학적 분리 등 어떤 방법으로 배출시킬지에 대해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특수 제작된 이 탱크들은 개당 1억 엔(약 10억 원)을 호가한다.

30∼40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폐로 작업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2013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처리와 배상비용으로 11조 엔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 액수는 지난해 말 21조5000억 엔으로 불어났다. 이는 폐로 과정 자체가 거대산업이라는 뜻도 된다.

사고 당시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란 비관론이 한때 비등했지만 6년이 지난 현지에선 암중모색의 복구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근로자들의 복장이다. 육중한 전면방호복이 아니라 간이 보호장구(안전조끼, 방사능 선량계, 마스크, 안경)만으로 다닐 수 있는 지역이 부지 350만 m²의 95%로 늘어났다.

7000여 명이 근무하는 이곳의 모든 활동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2시간가량의 취재를 위해 사전 준비와 사후 검사를 하는 데 3시간 반이 걸렸다. 한 단계씩 움직일 때마다 각자 몸에 쌓인 방사성 물질을 측정하고 다음 단계로 가도 되는지 확인한다. 양말, 장갑, 마스크 등 한 번 쓴 물건은 모두 방사능쓰레기로 폐기된다. 얼마나 막대한 비용이 드는지 실감할 수 있다.

도쿄전력 측은 그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원자로 냉각에 사용된 오염수 처리가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카무라 부장은 “오염수 대책은 인류 역사상 처음 겪는 일이다. 오염수와 지하수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원전 주변에 1500m 길이의 동토벽을 설치하고 해수차수벽을 두는 이중 장치를 했다”면서 직접 현장을 안내했다. 2013년 저장탱크의 누수로 오염수가 지하수에 섞여 바다로 유출된 이후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것을 의식한 설명이다.

도쿄전력과 국립원자력연구개발기구는 2015년 원전 근처에 원격기술개발센터를 세워 원전 처리와 폐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사고 원전 내 작업 훈련 장면이다. 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쿄전력과 국립원자력연구개발기구는 2015년 원전 근처에 원격기술개발센터를 세워 원전 처리와 폐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사고 원전 내 작업 훈련 장면이다. 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도쿄전력과 국립원자력연구개발기구는 2015년부터 원전에서 30분 거리의 나라하(楢葉)에 원격기술개발센터를 세우고 폐로 작업을 담당할 로봇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지역 해안 일대를 국제연구산업도시로 만들어 산업재생과 지역 활성화를 노린다는 전략도 세웠다. 직접 찾은 센터에서는 사고 원전 작업현장을 컴퓨터에 재현한 가상현실(VR)이 개발돼 작업원들의 훈련에 활용되고 있었다. 또한 수중로봇과 드론 실험 등도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6년간 후쿠시마 일대에서는 땅을 벗겨내고 아스팔트를 물로 닦아내는 제염 작업이 이뤄졌다. 4월 현재 피난 지시가 해제되지 않은 지역은 후쿠시마 전체 면적의 2.7%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안전 선언에도 아직 8만 명이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현이 운영하는 농업종합센터, 수산시험장 등에서는 “기준치를 넘어선 농수산물은 절대로 유통시키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전수조사 수준의 강도 높은 검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은 싼 가격에 팔리고 판로를 구하기도 어렵다”며 한숨을 쉰다. 하가 노부오(芳賀信夫·65) 이와키시 어업협동조합 이사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쩌겠느냐”면서도 “원전은 정말 무섭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람들의 고단한 얼굴에서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원자력의 재앙을 확인하며, 한국의 수많은 원전을 떠올렸다.

후쿠시마=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후쿠시마원전 유출사고#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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