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책을 폈다… 결단의 순간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8일 03시 00분


“독서의 힘으로 백악관 8년 버텨”
루스벨트 전기 읽으며 해법 찾고 링컨-킹목사 저서 통해 공감 느껴
책읽는 사람 늘리는게 퇴임후 꿈

  ‘나만 유독 엄청나고 대단히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20일 퇴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56)은 지난 8년간 큰 결정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질 때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전기를 읽으며 이처럼 되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지휘한 선배 대통령에 비하면 자신의 과제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니 괴로워할 게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오바마 대통령 인터뷰 기사에서 그가 8년간 백악관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비법은 책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결단의 순간이 찾아오거나, 넘치는 정보와 시끄러운 당쟁으로 혼란스러울 때면 늦은 밤 홀로 관저 집무실에서 방황하다 책을 폈다.

 특히 깊은 고민에 빠져 외로워질 때면 전임 대통령 등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 읽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서 킹 주니어, 간디, 넬슨 만델라의 저서가 특별히 도움이 됐다. 역사를 거슬러 나와 비슷하게 외로움을 느꼈을 동료들을 발견하면 정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인물이 쓴 책이 아니어도 스케일이 큰 작품도 큰 위로가 됐다. 그가 매몰된 사안에서 잠시 빠져나와 사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광기, 잔인함, 어리석음 등 인간의 복잡한 면모를 폭넓게 보여 주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사안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세계과학소설협회가 매년 선정하는 휴고상 장편소설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류츠신(劉慈欣)의 공상과학소설 ‘삼체’는 스케일이 워낙 커서 백악관의 일상이 매우 사소하게 느껴지게 했다.

 보통 사람들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하기 쉽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바쁠수록 책을 손에 쥐었다. 그는 “일이 급히 돌아가고 숱한 정보가 난무할 때 독서는 내가 (일의) 속도를 늦추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능력을 줬다”라고 독서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점이 나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균형을 잃지 않게 도운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퇴임을 앞둔 요즘도 하루의 마지막 일정은 1시간가량의 독서로 맺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요즘 읽는 책은 심오한 철학서부터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등 현대문학, 고전소설, 논픽션 등 폭이 넓다. 그는 “가끔씩 내 머리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외딴곳에 있는 느낌을 주는 소설을 읽는다”고 전했다.

 책은 일찍이 오바마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길잡이가 됐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큰딸 말리아에게 전자책 ‘킨들’을 선물했다. 말리아의 킨들은 ‘백 년 동안의 고독’, ‘여전사’, ‘황금 노트북’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독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작문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일기를 꾸준히 썼고 만난 사람의 사연을 바탕으로 짧은 이야기도 만들었다. 그가 연설문을 잘 쓰는 이유도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고 잘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20일 퇴임 이후 오바마의 꿈은 책 읽는 사람을 늘리는 일이다. 그는 “세계화, 첨단기술, 이민 등으로 문화 충돌과 양극화가 심각한 오늘날, 사람들을 묶어 주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오바마#책#미국#대통령#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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