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해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Yes we did, Yes we can).”
10일(현지 시간) 오후 8시 50분 미국 시카고의 컨벤션센터인 매코믹플레이스. 하루 워싱턴을 떠나 자신의 정치적 고향에 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8년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오바마 신화’를 만든 옛 대선 구호를 외쳤다. 2만여 명의 남녀, 흑백 지지자들은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표정으로 열흘 후 백악관을 떠나는 대통령을 따라 소리쳤다.
이날 대국민 고별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난 여러분(국민)으로부터 배웠다. 국민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끝까지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높였다. 국가를 이끈 힘도, 이끌어갈 역량도 모두 국민에게 있다며 국민의 자긍심을 한없이 끌어올렸다. 청중에게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하면 비범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의 능력이 아니라 변화를 이뤄내는 여러분의 능력을 믿어라”라고 호소했다.
그는 “취임 후 글로벌 경제위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75개월 연속 일자리를 창출했고 2000만 명이 혜택을 보고 있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를 만들었으며 쿠바, 이란과의 국교도 정상화했다”고 말하며 임기 중 업적을 회고했지만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미국 사회의 여전한 인종 차별과 빈부 갈등을 솔직히 인정했다.
“내가 취임하면 인종 차별이 끝날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 도시 빈곤층과 시골의 많은 사람이 ‘게임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세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준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이내 희망의 메시지를 이어갔다. 그는 “우리는 두 걸음 나아가면 종종 한 걸음 뒤로 가는 것을 느낀다”면서도 “우리는 직면한 도전을 더 강하게 헤쳐 나갔다. 이 나라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 사분오열된 미국 사회를 통합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분노가 아닌 희망과 변화, 시민 참여로 더욱 무장하라고 역설했다. 그는 “자유와 대의를 위해 분투하라는 우리 헌법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준 가장 큰 선물이지만 국민의 참여가 없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변화를 위한 국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민주주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굴복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켓을 들거나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라(dive in).”
연설 도중 아내 미셸 여사에게 특별한 감사도 표했다. “원하지도 않은 역할을 우아하고 고상하게, 훌륭하게 해줬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미셸 여사도 따라 울었다.
특유의 유머도 잃지 않았다. 연설 시작 직후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러 2분간 말을 하지 못하자 “미 전역에 생방송 중인데 이제 자리에 좀 앉아라. 내 말을 안 듣는 것을 보니 내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이라는 거냐”라고 말해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지지자들이 “4년 더(Four more years)”를 외치자 “(3선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안 된다”며 웃었다.
50분간 이어진 격정적이면서도 정제된 연설에 CNN은 “과거에서 미래의 희망을 끄집어낸, 오바마 8년의 드라마를 완성한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위해 코디 키넌 연설비서관과 함께 9일 밤까지 원고를 최소한 네 번 직접 쓰고 고쳤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둘째딸 사샤(16)가 참석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부 누리꾼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사샤가 트럼프를 잡으러 나선 게 아니냐”는 농담을 올리기도 했다. 고등학생인 사샤는 다음 날 워싱턴에서 시험을 치러야 해 시카고까지 오지 못했다.
연설을 마친 오바마 대통령은 30분간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며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은 뒤 무대를 빠져나갔다. 지지자들은 연신 “정말 감사했습니다(Thank you so much)”라고 인사했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임기 말로는 이례적으로 6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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