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법원, 대학생들의 교재 복사-제본 허용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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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교재를 무단 복사, 제본해 공부하는 관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이색 판결이 인도에서 나왔다. 출판사들의 저작권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취지다. 현지 언론들은 “서방의 일괄적인 저작권 기준을 따르지 않고, 인도만의 기준을 제시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인도 델리고등법원은 16일 케임브리지대 출판부 등 3개 글로벌 대학교재 업체가 인도 델리대학과 대학 내 제본소들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무단 복사 및 판매를 했던 제본소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해당 출판사들은 2012년 8월 제본소들이 교재를 무단 복사, 제본해 학생들에게 판매하고 대학이 이를 용인하면서 저작권이 침해돼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델리대학은 인도 저작권 보호 예외조항에 ‘합당한 사용’ 부분이 있으며 여기에 학생들의 원활한 학습권 보장이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타임오스인디아에 따르면 인도 대학의 학기당 수업료는 8000루피(약 13만4000원)이나 교재 한권이 5000루피(약 8만4000원)나 해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게다가 원서 수급도 어려워 최대 반년 동안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번 소송이 제기되자 학생들은 대규모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며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보다는 저작물을 통해 공공의 지적 성취를 북돋아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작권은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니며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은 사회 유지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해당 판사는 본인이 대학 다닐 때는 제본소도 부족해서 직접 도서관에서 필사해서 복사본 만들었다는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앞서 인도 법원은 글로벌 저작권 및 특허권 기준을 따르지 않은 전례가 있다. 2012년 글로벌 제약사인 노바티스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가격을 초 고가로 정하자 저소득층 환자와 가족들이 대규모 시위를 펼쳤고, 이듬해 4월 인도 법원은 글리벡의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고 저렴한 복제약 생산을 허용했다. 당시 인도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1000달러(약 112만 원)이었지만, 글리벡 한달 복용분은 2500달러(약 280만 원)나 했다. 복제약 복용은 한달에 170달러(약 19만 원)였다.

삼나드 바셰르 지적재산권 전문가는 “저작권법은 공익과 사익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로비로 기업의 이익만 보호하는 쪽으로 강화돼 왔다. 이번 판결은 양측의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황인찬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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