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에 기댄 ‘퍼주기 정치’ 한계… 새 대통령 “정부지출 축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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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좌파 포퓰리즘’ 몰락]
차베스-룰라가 이끈 ‘좌파벨트’ 장기불황-저유가에 경제 직격탄
작년 브라질 성장률 25년만에 최저… 호세프, 회계조작으로 실적 부풀려
새 정권도 부패 연루돼 신뢰 못받아 10월 지방선거가 정국향배 가를듯

남미 좌파정권의 상징이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2013년 작고)은 2006년 9월 유엔총회 연설 도중 “이곳에서 (악마에게서 나는) 유황 냄새가 난다”고 일갈했다. 전날 같은 자리에서 연설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마에 빗댄 것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풍족한 자원에 힘입어 경제 호황기를 누렸던 남미 좌파정권은 기세등등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면서 브라질 14년 좌파정권도 끝났다. 차베스를 배출했던 베네수엘라는 저유가로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남미를 물들였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 좌파 물결)’의 색이 급속도로 옅어지고 있다.

○ 남미 좌파정권 위축세

남미에 좌파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후반이다. 세계적인 경기 호황 속에 풍부한 자원에 힘입은 수출 증대로 생긴 이익을 국민에게 퍼주는,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이들은 지지세를 넓혀 갔다. 1999년 차베스가 집권한 데 이어 2002년 브라질 대선에선 노동자 출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당선됐다. 이후 2003년 아르헨티나, 2004년 우루과이, 2006년 칠레와 볼리비아에 좌파정권이 들어섰다. 캐나다 글로벌리서치는 “남미 좌파정권들이 연합해 2005년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을 막은 것이 남미 좌파세의 정점이었다”고 분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발 경제위기에 이어 지난해부터 저유가가 이어지면서 남미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민에게 퍼주던 복지 혜택을 제때 줄이지 못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지난해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3.8%로 25년 만에 최저치였다. 올해도 ―3.2%로 뒷걸음질칠 것으로 보인다.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경제위원회(ECLAC)는 지난달 올해 중남미 경제성장률을 ―0.8%로 잡아 지난해(―0.5%)보다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호세프의 탄핵 사유는 국영은행의 자금을 끌어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워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2014년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경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호세프는 정부 회계 조작 외에도 경제 실정의 책임이 있다”고 보도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지지도 하락이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 취임하자마자 거세지는 ‘테메르 퇴임론’

호세프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된 미셰우 테메르 신임 대통령(76)은 취임 일성으로 “정부 지출을 축소해 경제를 살리고 투자 유치를 위해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전날보다 0.4% 오른 달러당 3.2267헤알로 마감해 시장의 기대를 반영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테메르도 호세프만큼 인기가 없어 국정 운영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브라질민주운동당은 10년 넘게 노동자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그 역시 정부의 실정(失政)에서 자유롭지 않다. 호세프와 달리 테메르 대통령은 개인 비리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는 국영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가 정치권에 뇌물을 건넨 스캔들에 연루돼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친(親)테메르계 장관 3명도 부패 스캔들로 사임했다. “차악(次惡)의 지도자를 맞게 됐다”며 벌써부터 ‘테메르 퇴진’을 외치면서 거리로 나서는 이들이 많다.

극심한 정치 혼란 속에 승복의 정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호세프는 테메르 정권을 ‘쿠데타 정권’으로 규정하고 정권 탈환 의지를 밝혔다. 호세프의 정치적 후견인인 룰라 전 대통령의 출마설도 나온다.

다음 달 열리는 지방선거가 향후 정국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실업률 11.6%, 물가상승률 9%로 고전하는 경제의 회복이 선거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WSJ는 “테메르는 축포를 터뜨리기 전에 실질적인 경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브라질#호세프#탄핵#중남미#회계조작#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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