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숭호]쿠데타에 노출된 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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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숭호 정치부 기자
조숭호 정치부 기자
지난달 15일 터키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 소식은 한가롭던 주말을 떠들썩하게 했다. 쿠데타 진압 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군부 숙청과 법조·언론인 탄압은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정작 놀랄 일은 사람들이 쿠데타에 정신이 없어 놓친 부분에 있다. 터키에 배치된 미국의 핵폭탄이 쿠데타의 혼란 와중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터키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의 21개 지하고에는 미군 B-61 핵폭탄 50기가 저장돼 있다. 유럽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많다. 터키 정부는 “기지에 쿠데타 세력이 은신해 있고 일부는 비행기를 탈취해 국외로 도주했다”며 기지의 전기를 끊었다. 그러자 레이더를 비롯한 관제시설이 멈췄고 전투기 출격과 기지 운영이 마비됐다. 주터키 미국대사관은 자국민에게 위험 메시지를 발령하고 비상발전기를 가동한 뒤 핵무기 경계태세를 최상급인 ‘FPCON-델타’로 격상했다. 이는 핵무기가 탈취됐거나 공격이 임박했을 때 내려지는 경고다. 실제 이 기지는 시리아 국경에서 1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이슬람국가(IS)의 공격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의 10배가 넘는 170kt의 위력을 가진 B-61 핵폭탄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주한 미공군은 군산 기지에서 이 핵폭탄을 싣는 핵 탑재 훈련도 실시했다. 만약 한국에 전술핵무기 재배치 논란이 다시 불거진다면 이 핵폭탄이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미군이 갖고 있는 전술핵무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F-15, F-16 전투기에 장착해 언제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핵위협 가중으로 한국의 핵무장론을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터키 사례를 보면 핵무기는 파괴력이 위력적인 만큼 그 자체가 위험 요인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터키에 배치한 핵무기의 이점은 미미하지만 위험은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게 이번 사태의 핵심 교훈”이라고 전했다. 핵무기가 통제 불능에 빠지면, 심지어 적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이는 곧 재앙이다. 물론 핵위협을 일삼는 북한의 핵개발 자체가 이미 재앙 수준이긴 하다.

북한의 핵개발 지속으로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를 논의하는 상황이 온다면 아마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논란보다 엄청나게 큰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것이다. 레이더 유해성 논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핵(核)’이라는 단어의 공포도 크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드, 핵무기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무기라도 보유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합리적인 결정 과정과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무기 보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구성원들이 감당할 수 있다. 사드 논란이 어떻게 끝날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우리 사회의 역량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들어 같은 혼란에 다시는 빠지지 않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조숭호 정치부 기자 shcho@donga.com
#쿠데타#북한#핵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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