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법보다 힘이 앞서는 남중국해 헤이그 재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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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26, 27일 일본 미에(三重) 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곧 내놓을 판결을 중국이 존중하라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PCA 판결을 둘러싼 분쟁은 중국과 필리핀 두 나라를 넘어 이제 국제적인 문제가 됐다.

필리핀이 2013년 1월 중국과 영토 갈등을 빚는 사안에 대해 PCA에 중재를 신청하자 중국은 중재 재판에 참가하지도, 판결을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류샤오밍(劉曉明)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20일 런던에서 “국제중재법정은 당사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요한데 중국이 참여하지도 않는 PCA가 내놓을 판결은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며 합법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PCA 판결은 필리핀 주장을 상당 부분 반영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일본 등 G7과 유럽연합(EU)은 ‘국제재판소의 판결 존중’을 들어 필리핀을 지지한다. 반면 러시아 등 40여 개국은 중국 편을 들어 ‘남중국해판 냉전’이 재현되는 듯한 모양새다.

필리핀이 중재를 요청한 내용의 쟁점을 한번 들여다보자. 필리핀은 ‘9단선(九段線)’ 내 일부 섬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유엔해양법 협약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1947년 처음 설정한 9단선은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9개의 선으로 중국은 9단선 안쪽 약 80%가 자국 영해라고 못 박았다.

필리핀은 또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 군도)의 미스치프 환초(메이지자오·美濟礁), 수비 환초(주비자오·渚碧礁), 파이어리크로스 환초(융수자오·永暑礁) 등은 간조기에만 드러나는 산호초여서 영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진행하는 인공섬 조성과 시설 설치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공섬을 기초로 영토 주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미국도 중국에 제기하는 핵심 사안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유엔해양법 협약상 PCA 관할이 인정되지 않는 ‘주권에 관한 것’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또 필리핀이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로 한 양국 간 협약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제소한 점을 꼽았다. 설령 주권 사항이 아니고 협약 해석과 적용에 관한 것이어도 역시 ‘중재 배제 사유’로 분류되는 ‘(국가 간) 경계 획정’이라는 점을 들어 재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1982년 체결된 유엔해양법 협약으로 훨씬 이전에 설정된 9단선의 합법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편다. 이에 대해 PCA는 7차례의 당사국 및 전문가의 청문회 등을 거쳐 내린 결정에서 “이번 건은 주권 문제나 경계 획정 사안이 아니며 양자 간에 충분히 분쟁 해결 노력을 했지만 실패한 뒤 제소했기 때문에 관할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여기서 복잡한 법률적 논리를 떠나 이번 분쟁이 ‘법률적으로 해결될 사안’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대한 접근은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공섬에 해군과 공군을 배치해 자신들의 주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처럼 ‘살아 있는 군사력에 의해 (사실이) 좌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책을 찾는 것은 ‘학문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번에 PCA가 어떤 판결을 내려도 강제집행력이 없다. 과거에도 판결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분쟁 해결은커녕 갈등을 키우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상의 모든 국경과 해양주권 영역은 법의 해석이 아니라 어느 땐가 형성된 세력 관계가 표현된 것이다. 이번 PCA 판결 갈등의 본질은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해석을 놓고 충돌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남중국해 분쟁#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중재#필리핀#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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