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비판’ 초안 돌리자 전세계 학자들 지지 밝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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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187명 집단성명 뒷얘기
3월 시카고서 亞연구협회 연차총회… 韓-日, 참석자 대상 치열한 여론전
학자들, 아베에 서한 보내기로 결정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사 인식을 비판하는 세계 역사학자 187명의 집단 성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시작은 한 달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베 총리 방미를 한 달 앞둔 올해 3월 26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 셰러턴호텔에서 미국 내 아시아 연구자 10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아시아연구협회 연차총회가 열렸다.

29일까지 3박 4일 동안 400여 개 세션이 열린 이 초대형 행사에서 한일 간 역사 외교전이 펼쳐졌다. 일본 측에서는 저팬파운데이션(JF), 일본 아시아역사 기록센터 등이 부스를 열고 일본 현대사를 홍보했다. 이에 맞서 한국은 한국국제교류재단(KF), 동북아역사재단 등이 독도 영유권과 동해 병기 문제 등을 알리는 전시관을 열었다.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한일 양국 정부 당국자들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미국 지식인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시카고 총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 측은 주미대사관 관계자가 급파됐고 일본 측은 총리실에서 직접 전문가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한국 측의 판정승이었다. 일본 관련 세션에서는 미국 드레이크대 메리 매카시 교수가 ‘일본 민주정치에서의 위안부 이슈’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등 아베 정권의 우경화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일본 세션에 참석했던 학자들 위주로 아베 총리에게 직접 연명 서한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동참한 전대미문의 성명은 이렇게 태동했다. 올해 2월 미국 역사학자 20명의 집단 성명을 통해 아베 정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던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를 중심으로 6, 7명의 핵심 멤버가 초안을 작성했다. 회원들은 협회 홈페이지의 회원 전용 사이트와 개인 e메일 등을 통해 회람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내용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의 역사학자들이 지지 의사를 알려 왔다.

더든 교수는 “성명 초안에 대해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잔혹성에 대해 수백 쪽의 의견서를 쓰고 싶었지만 가능한 한 최대 한도로 간명하게 성명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온 성명의 내용은 올해 2월 미국 역사학자 20명이 낸 성명에 비해 일본에 대한 비판 수위는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학자와 언론인, 정치인들이 과거사 문제를 민족주의적으로 활용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한 아시아 전체의 책임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성명 작성 과정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 편을 든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서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소식통은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일본과 과거사 갈등을 빚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서명자 명단에서 가급적 제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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