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메이지(明治)시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이례적으로 8개 현에 걸쳐 23개나 되는 시설을 무더기로 이름 올리고, 그 시설들의 산업화 기여 기간을 한일병합조약 체결(1910년) 이전까지로 한정한 것에 대해 조선인 강제징용자 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천한 23개 산업시설물에 포함된 나가사키(長崎) 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과 이와테(巖手) 현의 하시노(橋野) 철광산 유적은 직선거리로 약 1300km 떨어져 있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광범위한 지역에 떨어져 있는 유산 전체가 하나의 산업유산 집합체로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시마 탄광에는 조선인 약 600명이 강제 동원돼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후쿠오카(福岡) 현 미이케(三池) 탄광과 미이케 항에도 조선인 약 9200명이 동원됐다. 한국 정부는 7개 시설에 조선인 5만7900명이 강제 동원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시설에다 일반 시설 16개를 더해 전체 23개 시설을 신청함으로써 징용 문제를 지엽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또 등재 신청서에서 23개 시설에 대해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서양 기술을 전통문화와 융합해 산업 국가를 형성한 궤적을 보여준다’는 설명을 붙였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23개 산업시설은 1910년 이전의 이야기다. 거기에 강제적으로 조선인의 노동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외교 통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한국 정부에 설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이 신청한 산업시설 중 탄광과 제철소, 조선소 등은 태평양전쟁 시절 군수물자와 에너지 생산의 전진기지였다. 노동력이 부족해 1940년 전후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대규모로 노동자를 징용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23개 시설이 1910년까지 일본의 성장을 이끈 것처럼 유네스코에 신청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일본 국내에서도 23개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카제 히데마사(小風秀雅) 오차노미즈(お茶の水)여대 교수(일본근대사 전공)는 5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유산은 빛과 그림자 모두를 전체로 보고 평가해야 한다. 양측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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