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에 놀란 美 ‘애국법’ 속전속결… 수사 마찰 시행착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테러방지법, 美가 주는 교훈]

2001년 10월 2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9·11테러 직후 미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1년 10월 25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9·11테러 직후 미 의회를 통과한 ‘애국법’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 사건을 계기로 여당인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선언하면서 지난 15년간 국회에서 공전(空轉)됐던 테러방지법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법이 국가정보원 등 수사 및 정보기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민간인 사찰 등 인권 침해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테러방지법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이른바 ‘애국법(Patriot Act)’의 제정 과정과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국법의 현재를 조명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찾아본다. 》

○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필요

미국 ‘애국법’이 만들어진 배경은 2001년 9·11테러였다.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를 막고 테러의 주범이었던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 의회는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감청 및 수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법안 마련에 착수해 2001년 10월 25일 ‘애국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는 즉시 그날 발효됐다. 최소 수개월이 걸리는 미국의 입법 관행으로 볼 때 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파격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것이다. 빨리 통과시키지 않으면 제2의 9·11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여론의 힘을 등에 업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사회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법의 위헌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법 통과 3년 만인 2004년 2월 35개 주 240개 지방 정부는 아예 부시 행정부를 향해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 집행 자체를 거부하고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법 제정 이후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국가안보국(NSA) 등의 무소불위적 수사 행태가 본격적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NSA가 미국 내 테러 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 감청 등 국민 사생활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고 폭로한 게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해 12월 미 연방 1심 법원인 워싱턴 지방법원은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위헌 소송에서 “NSA의 정보 수집은 시민에 대한 부당한 압수 수색을 금지한 미 수정 헌법 4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통해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NSA가 미국 시민들에 대한 전화 통화 내용을 수집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하는 내용의 ‘미국자유법안(USA Freedom Act)’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지난해 5월 연방 하원을 통과했지만 11월 상원 통과에 실패해 재상정 여부가 주목된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애국법의 변천 과정은 한국의 대테러법 제정에도 참고가 될 것”이라며 “특히 과거 군사정권의 인권 침해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들을 설득할 정부와 정치권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 도널드 맨줄로 소장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빨리빨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합의와 공감이 중요하다”며 “제정 후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 기관 설립보다 테러에 대한 정의가 먼저


미국 ‘애국법’은 테러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즉 ‘테러’란 △민간인들을 협박하거나 강요하기 위한 의도로 행해지거나 △협박이나 강요에 의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행해지거나 △집단적 파괴, 암살, 유괴 등에 의해 정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한국 법 체계에서는 ‘테러’ 개념에 대한 정의는 없고 1982년 대통령 훈령으로 마련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 전부다. 미국의 한 테러법 전문가는 “테러란 무엇인지, 테러의 행위와 주체를 어떻게 정할지 하는 문제는 테러방지 실행 매뉴얼을 만들기 위한 기본 출발”이라며 “예를 들어 테러행위를 국내인이나 북한으로만 한정할 경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이슬람국가(IS) 테러범들은 추방밖에는 대응 방법이 없게 된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기구 설립도 서둘 일이 아니라고 조언한다. 미국은 ‘애국법’ 제정 후 수사기관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대테러 조직을 신설했다. 그 결과 생겨난 것 중 하나가 무려 22개 부처와 기관을 통합한 ‘슈퍼 대테러 기관’인 국토안보부(DHS)였다. 국토안보부가 너무 비대하다 보니 연방수사국(FBI) 등 다른 관련 기관과의 업무 충돌이 빈번했고, 이 때문에 기능을 일부 재조정해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FBI 워싱턴지국의 한 관계자는 “기관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조직을 무조건 합친다고 해서 대테러 기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존 조직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지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은 국가정보국(DNI)을 중심으로 DHS 정보분석처, FBI, CIA, NSA 등 관련 조직이 테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테러 정보 커뮤니티’를 형성해 협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애국법(Patriot Act) ::

미국 의회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 대응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만든 테러방지법. 국가안보를 위한 법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법명에 ‘Patriot(애국자)’을 넣었다. 테러 용의자를 조기에 파악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유선, 구두 통신 및 e메일 감청을 대폭 확대하고 테러 혐의를 받는 외국인의 기소 전 구금 기간을 48시간에서 최고 7일까지 늘린 것 등이 핵심이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신석호 특파원
#테러방지법#미국#애국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