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아랍의 봄’ 불댕긴 튀니지, 홀로 남은 민주화 꽃망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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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민주적 대선 치러… 세속-반체제 후보 12월 결선 투표
원리주의 강조한 이집트와는 달리… 튀니지 이슬람은 유연한 접근 택해
국민저항 위기 거국내각으로 넘겨… 취업난에 젊은층 IS行 늘어 골머리

이슬람 국가들의 민주화 시위인 ‘아랍의 봄’ 진원지였던 튀니지는 아랍 민주화의 ‘마지막 불씨’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튀니지가 23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랍의 봄을 경험한 국가들 중 튀니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피의 겨울’을 거치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튀니지가 이번 선거를 통해 사상 첫 문민 대통령까지 탄생시킨다면 아랍의 봄 모범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 튀니지 민주화는 진행형

튀니지는 2011년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을 내쫓았다. 이후 3년여 만인 23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튀니지 국영방송이 보도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과거 독재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맡았던 세속주의 성향의 정치인 베지 카이드 에셉시 후보(87)가 득표율 47.8%로 1위를 차지했다. 독재정권 몰락 뒤 지금까지 임시 대통령을 맡아온 반독재 투사 문시프 마르주끼 후보(69)는 득표율 26.9%로 2위였다. 27명의 대선 후보 난립으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2월 말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됐다.

이번 튀니지 대선은 독재정권이 쫓겨난 뒤 아랍의 봄 진원지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대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른 아랍 국가들의 사정은 다르다. 이집트는 합법적으로 집권한 이슬람 정권을 군부가 쫓아냈고 리비아는 군벌들이 난립한 내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튀니지 대선은) 중동의 모든 국가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 이집트와 다른 튀니지


‘아랍의 봄’ 당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나라는 이집트였다. 이집트는 30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민주화 시위로 몰아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합법적으로 집권할 때까지만 해도 아랍 민주화의 선두주자로 인식됐다. 독재자를 몰아낸 뒤 이슬람 세력의 집권까지는 이집트와 튀니지가 똑같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권력을 차지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원리주의만 강조하고 민생 문제 해결에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반면 튀니지에서는 온건 이슬람 성향의 엔나흐다당이 과도정부를 이끌면서 경제 분야 등에서 개혁을 이뤘다.

이슬람 집권세력에 시민 저항이 일어났을 때 정부 대응 자세도 크게 달랐다.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은 무력을 동원하면서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다. 반면 튀니지의 엔나흐다당은 야당 세력과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 튀니지의 민주화 모델 터키

튀니지는 터키를 모델로 민주화 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처럼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종교보다는 경제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터키의 민주화 수준이 크게 떨어지면서 오히려 튀니지의 민주화가 더 기대되고 있다.

과거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1974∼1979년 터키를 이슬람 국가들 중 유일하게 ‘부분적으로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터키의 민주화 수준은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총리를 거쳐 대통령에 오르면서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고 독재 스타일로 변모했다”며 “이 과정에서 터키의 법치주의가 크게 손상됐다”고 지적했다. WP는 “반면 튀니지의 엔나흐다당은 종교(이슬람교)와 세속 집단 간 타협을 가능하게 했고 유연한 모습을 보이며 실용적으로 접근했다”고 분석했다.

○ 튀니지의 한계와 우려


아랍 민주화의 마지막 불꽃으로 평가받는 튀니지에도 한계와 우려는 남아 있다.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는 아랍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튀니지는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전사의 주요 공급처가 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IS 대원 포섭을 위한 설교와 모집을 더 손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못한 민생 문제도 젊은이들이 IS행을 택하는 이유다. 튀니지는 아랍 국가들 가운데 대학 졸업자가 가장 많지만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쳐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독재 역행’이라는 이집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기용 kky@donga.com·박희창 기자
#튀니지#이슬람#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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