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다시 주목받는 ‘북방정책 25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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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냐 중국이냐?… 한국외교 ‘비세그라드’서 길 찾는다
작전명 ‘푸른 다뉴브 강’… 외교 다변화 새 도전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17일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비세그라드 그룹’ 외교장관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대표. 폴란드는 국내 사정으로 차관보가 외교장관 대신 회의에 참석했다. 외교부 제공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17일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비세그라드 그룹’ 외교장관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대표. 폴란드는 국내 사정으로 차관보가 외교장관 대신 회의에 참석했다. 외교부 제공
“작전명 ‘푸른 다뉴브 강’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1988년 7월. 헝가리행 비행기에 오른 박철언 당시 대통령정책담당보좌관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 한마디밖에 없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성패를 가름할 첫 시험대에 오른 만큼 박철언으로서도 중압감을 쉽게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베를린장벽 붕괴(1989년 11월)까지는 1년도 더 남은 시점이었고 옛 소련의 붕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당시 한국은 동구권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를 시도하고 있었다.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 대부분 국가를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을 작전명으로 택한 것도 헝가리에 그치지 않고 당시 북한과 수교를 하고 있던 동구권 국가들을 외교로 아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헝가리를 첫 수교대상으로 정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헝가리는 민족이 동양계인 마자르족(族)으로 한국과 정서가 비슷하고 동구 국가 중 개혁·개방의 선두주자였던 데다 소련으로부터 가장 독립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헝가리가 먼저 서울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는 등 호의적이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2개월여의 줄다리기 협상 끝에 그해 9월 13일 양국은 서울과 부다페스트에 각각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고, 이듬해인 1989년 2월 1일 공식 수교협정에 서명한다. 이어 동구권 수교가 파죽지세로 이어져 같은 해 11월 폴란드, 12월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했고 1990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와 국교가 수립됐다. 1991년 8월 알바니아와 수교하면서 동유럽 7개국과 관계 정상화가 모두 마무리됐다.

동구권 수교가 없었다면 소련·중국과의 수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고위급회담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도 불가능했을 수 있다.

한국 외교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던 북방외교가 올해로 25년째를 맞았다. 한국은 이제 ‘비세그라드 그룹’ 외교회담을 통해 제2의 북방외교사(史)를 새롭게 쓰려고 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고위급 회담 갖자” 먼저 제안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7월 17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비세그라드 그룹과 첫 외교장관회의를 가졌다. 비세그라드 그룹은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4개국이 1991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목표로 창설한 지역협의체다. 옛 동구권 국가들이 모여 서방 주도의 EU에 가입하고 군사협의체인 나토까지 동참한다는 목표가 4개국을 공동운명체로 묶었다. 이들이 서울에서 한-비세그라드 그룹의 첫 정무차관보 회의를 연 것은 올해 6월.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외교장관회의까지 일사천리로 내달린 것이다.

윤 장관은 귀국 후 기자를 만나 “과거엔 폴란드가 한국과 1 대 1 회담도 갖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콧대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4개국 외교장관이 한국 장관을 만나기 위해 한꺼번에 모여 앉을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폴란드 체코는 북한에 대사관이 있고 주한 헝가리 슬로바키아 대사가 남북한을 겸임하고 있다. 정무적으로 볼 때 이들의 체제 변화 경험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데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체코와 분리되면서 1993년 재수교한 슬로바키아가 한국과 비세그라드 4국이 관계를 맺는 데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수교 20주년을 맞아 방한한 미로슬라프 라이차크 슬로바키아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윤 장관에게 고위급 교류를 약속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올해 슬로바키아가 비세그라드 그룹 순회 의장국을 맡으면서 한국을 외교장관회의에 초대했다.

외교부 집계에 따르면 한국 기업으로 인해 유발되는 경제효과는 슬로바키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1%를 차지하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에 이른다. 고용효과도 2만7000명이나 된다. 슬로바키아 인구가 550여만 명이니 현지인 200명 중 1명이 한국 기업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산술적인 계산이 나온다.

한-헝가리 교역량 25년 사이 100배 증가

그동안 비세그라드 그룹과 한국의 경제적인 협력 확대는 괄목할 만하다. 헝가리와 한국의 교역량은 집계를 시작한 1976년 당시 37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 뒤 10년이 지난 1986년이 되도록 교역량은 700만 달러에 머물렀다. 하지만 수교협상 중이던 1988년 교역량은 20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고 1994년엔 1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헝가리 교역 규모는 25억8100만 달러였다. 지난 25년 동안 교역 규모가 100배 성장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과 비세그라드 4국을 합친 교역량은 137억9000만 달러로 유럽지역에서 독일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했다. 영국(109억2000만 달러), 네덜란드(97억3000만 달러)를 크게 웃돈다. 투자도 49억4200만 달러로 유럽 국가들 중 3위를 차지했다.

올해 국민연금은 선진국 위주 해외 부동산·기간시설 투자에서 신흥국으로 대체 투자처를 옮기면서 폴란드를 선택했다. 조만간 폴란드 쇼핑몰 2곳과 방송통신탑 등 부동산에 8200억 원 규모로 투자를 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 비세그라드 그룹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수도 330곳이 넘는다.

한국은 지난해 EU와의 교역에서 74억 달러 적자를 봤지만 비세그라드 그룹 4개국과의 거래에서는 98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비세그라드 평균 경제성장률(3.5%)이 EU 평균(1.9%)을 크게 압도하고 있다”며 “생산·소비 시장으로서 가능성,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략적 요충지, 유럽대륙 중심이라는 물류시장의 기회로 비세그라드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베이징 거쳐 평양으로’

한국은 1988년 7·7선언을 통해 북방외교와 공산권 수교를 추진하면서 ‘북한이 한국 우방과 수교하는 것도 적극 지원한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내심은 북한의 고립 유도와 흡수통일 촉진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북방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스크바와 베이징(北京)을 거쳐 평양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헝가리와 수교하자 북한은 곧바로 헝가리와의 외교관계를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급으로 낮췄다. 노동당 노동신문은 ‘반(反)사회주의자들의 사회주의 원칙 이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헝가리의 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북한이 당시 북방외교를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제2의 북방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북한의 경계심을 잘 읽고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세그라드 외교장관회담뿐 아니라 한국 정부는 중견국, 주변국을 상대로 외교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 주도로 결성된 중견국 협의체인 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를 발족한 것을 비롯해 아세안 국가를 대상으로 한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중동국가를 상대로 한 한-GCC(걸프협력회의) 전략대화 등이 그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다만 한국 외교가 기존의 4강 중심 외교에서 탈피한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 여전히 남북 대결이라는 과거의 틀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은 7월 26일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사건을 규탄하는 MIKTA 외교장관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이 1983, 1987년 대한항공(KAL)기 격추사건과 북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의 피해국임을 강조했다. 북한 비판에 몰두하다 보니 맥락에 맞지 않는 사례를 갖다 댄 것으로 견강부회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 올해 한반도클럽(남북한 동시 공관 개설국 대사 모임)에 이어 평화클럽(남북한 겸임국 대사 모임)을 발족했다.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로 통일준비 외교를 측면 지원하겠다는 취지지만 북한으로서는 고립 압박 전술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전직 외교 당국자는 “올해 6월 방북 신청을 했던 주한 호주대사(북한 겸임)에게 북한이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도 이런 경계심의 단면을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남북 구도에만 매몰되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이해 당사자들의 움직임을 놓친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이 1988년 북방외교를 본격화하자 일본은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1989년 1월 북한 노동당 대표의 입국을 처음으로 허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최근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당국 간 협의를 재개하고 대북 제재 해제를 결정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 어렵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6공 당시 북방외교는 군인 출신 대통령이었음에도 국제 정세를 종합적으로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점에서 평가해줄 대목이 있다”며 “오히려 지금 한국 정부는 좌우를 아우르는 노력이 부족하고 당파성이 강화돼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 비세그라드 ::

1991년 2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인근 비세그라드 시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 3국 정상이 모여 상호 우호 증진을 목표로 만든 협의체. 구체적인 목표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공동 가입을 내세웠다. 이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돼 참가국은 4곳이 됐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북방정책#비세그라드#한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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