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독한 만델라, 남아공 정쟁 한복판에 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야당 “ANC-주마 대통령이 내년 총선 캠페인으로 병세 활용”
ANC “야당이 정쟁거리 만들어… 만델라 쾌유 기원 뭐가 잘못됐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위중한 병세가 4주째 이어지면서 만델라의 병세 자체가 남아공 정치권의 정쟁 대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남아공은 내년 4∼7월 총선을 치르고 여기서 구성된 의회가 5년 임기의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여당 총재가 대통령이 되는 간선제다. 현재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총재는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다.

백인이 중심인 제1야당 민주동맹(DA)과 ANC에서 분리된 흑인정당 국민회의(COPE)는 지난 주말부터 “ANC와 주마 대통령이 만델라의 병세와 대중의 고통을 총선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통령실이 만델라의 건강정보를 독점해 발표하는 것도 언론의 관심을 이용하는 선거캠페인의 일환이라는 것. 병원 밖에서는 당원들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야당은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오후부터 만델라가 입원한 병원 앞에서는 ANC 청년당원들이 ‘2014년 ANC에 투표하자’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만델라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대선에 나설 주마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1950년대 ANC청년위원장을 지냈고 출옥 후 의장이 돼 첫 흑인 대통령으로 뽑힌 만델라는 ANC의 역사 그 자체다.

현재 남아공 의회는 400석 중 ANC가 264석, 민주동맹이 67석. 국민회의가 30석을 갖고 있다. ANC가 내년 선거에서 이길 게 확실하지만 백인과 흑인 지식층에서는 주마와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매우 크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전 대주교는 올해 5월 “하루아침에 낙원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쯤이면 빈부 격차가 상당히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며 “앞으로 ANC에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가운데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의 대표적 인사로 미국에 머물러온 맘펠라 람펠레가 지난해 귀국한 뒤 올해 2월에 “남아공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신당 ‘아강(Agang)’을 창당했다. 아강은 총선에서 민주동맹, 국민회의와 함께 ANC를 견제하는 주요 세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ANC는 “야당이 오히려 만델라의 건강을 정쟁거리로 만들고 있다”며 “ANC의 아버지 같은 만델라를 위해 집회를 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발했다.

한국 교민들에 따르면 다수의 일반 백인은 만델라의 와병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화제로 삼지 않는 등 멀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한편 지난달 30일 만델라가 18년을 복역한 케이프타운 앞바다 로벤 섬 감옥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불의에 맞서고 굴복을 거부한 용감한 사람이 있던 자리에 서게 돼 겸허한 심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날 케이프타운대 연설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전력 개발에 160억 달러(약 18조1360억 원)를 투자하는 ‘파워아프리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프리토리아=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