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흑 갈등, 공존의 길을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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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불매운동의 메시지

[채널A 영상] 20년 전 LA폭동 재연?…긴장감 고조

미국 댈러스 한인 주유소 앞에서 흑인들이 ‘상품 구매를 거부하라(Stop Don’t Shop)’
등의 피켓을 들고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브러더 제시 블로그’
미국 댈러스 한인 주유소 앞에서 흑인들이 ‘상품 구매를 거부하라(Stop Don’t Shop)’ 등의 피켓을 들고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브러더 제시 블로그’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한인 업소에 대한 흑인 주민들의 불매운동이 반한(反韓) 감정으로 확산되지는 않을지 한인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본보 30일자 A16면 美 댈러스 ‘한-흑 갈등’

다행히도 현지 언론과 흑인 대상 웹사이트 등에 따르면 불매운동은 이달 5∼10일을 고비로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한인사회는 이번 사태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같은 대형 인종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흑인단체들과 긴급 협의를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또 그동안 흑인 커뮤니티와의 소통 강화에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인종 간 결속 모색을 위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 불매운동 진정 국면

2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시작된 시위는 댈러스 남쪽 흑인 밀집지역 다이아몬드샴록의 마틴루서킹 대로에 있는 한인 박모 씨가 운영하는 주유소 겸 편의점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이슬람민족운동(NOI) 등이 주축이 된 흑인 시위대는 ‘이 업소는 흑인을 N단어(검둥이)로 부른다’ ‘흑인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른다’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상품 구매를 거부하라(Stop Don’t Shop)”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불매운동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흑인 운동가인 캐럴린 데이비스 시의회 의원, 자니타 윌리스 NAACP 댈러스지부 대표, 로널드 라이트 목사 등이 주도하고 있다. 박 씨의 신고로 충돌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이 유튜브 등에 공개되면서 한때 반한, 반아시아계 감정이 극도로 악화돼 30∼40명에 달했던 시위대는 이제 주중 3∼4명, 토요일 7∼8명에 불과할 정도로 축소됐다.

다이아몬드샴록 지역에는 박 씨 가게 외에 한인 상점 30여 개가 밀집해 있지만 불매운동이 인근 한인 상점에까지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현지 NBC5 DFW방송은 16일 “많은 흑인이 한인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흑인은 이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주인 박 씨와 같은 미군 출신”이라며 “박 씨는 평소 인종 차별적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흑인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게시판과 블로그 등에도 지난해 12월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글이 많이 올라왔지만 최근 10여 일 동안에 올라온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유명 흑인 블로그인 ‘브러더 제시 블로그’에는 ‘사건이 과장된 것 같다’ ‘양쪽 의견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 등의 댓글이 여러 건 올라오고 있다. 이번 일을 두고 시위대 주장처럼 흑인 비하 단어까지는 나오지 않았다는 게 박 씨와 말다툼을 벌인 이슬람교 단체 간부 흑인 제프리 무함마드 양측의 공통된 의견이다.

○ 공존노력 부족이 원인

댈러스는 미국 내에서 네 번째로 큰 한인 도시로 8만여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1991년 이민 와서 미군에서 12년 동안 근무한 미국 시민권자인 박 씨는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주유소를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박 씨 가게에서 일하던 한인 종업원이 금전등록기를 떼어가려는 흑인 강도를 총으로 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지 흑인들 사이에서는 ‘어떻든 이번 일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상점들이 흑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공존 노력이 부족한 데서 출발했다’는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불매운동 기자회견에서 흑인 지도자들은 “우리를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와 돈만 벌어가는 아시아계 상점은 필요 없다”며 “흑인 커뮤니티에는 흑인(을 위한) 비즈니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주 한인사회는 흑인단체들과의 적극적인 대화 모색에 나서고 있다. 안영호 댈러스 한인회장은 2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씨가 26일에야 한인회에 신고해 대응이 뒤늦게 전개됐다”며 ”이번 일이 인종이 아닌 개인 갈등이라는 점을 흑인사회에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회는 댈러스 흑인상공회의소와 접촉해 불매운동 중단을 요청하는 한편 이 지역 에디 버니스 하원의원과 면담을 하고 “흑인 커뮤니티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29일 사태 수습을 위해 현지에 급파된 조윤수 휴스턴 총영사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한인사회가 흑인 커뮤니티와 사업정보 공유, 자매결연, 기부 활성화 등을 통한 대화 채널을 지속적으로 공유해야 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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