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투기 근절-富 재분배 새 질서 필요”

  • 동아일보

공식기구 정의평화위 “세계 금융체제 개혁” 성명…
反월가 시위대의 자본주의 탐욕 경고와 비슷해

“국제금융체계가 부정(不正)으로 얼룩져 이를 개선하지 못하면 적대감과 폭력으로 비화하고 민주주의도 훼손될 것이다”

‘월가 점령’ 등 반자본주의 시위가 지구촌에 퍼지고 있는 가운데 로마 교황청이 자본주의의 탐욕을 준엄하게 꾸짖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교황청 내부 공식기구인 ‘바티칸 정의평화위원회’는 24일 세계 금융체계의 개혁과 ‘초국가적 기구’의 창설 등을 요구했다. 위원회는 성명에서 “도덕과 보편적 선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가 필요하다”며 창궐하는 투기의 종식과 부의 재분배 등을 요구했다. 월가 시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금융자본 개혁 등의 주장과 결을 같이하는 대목이 적잖이 포함돼 있다.

성명은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낡은 조직으로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규모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할 수 없으며 현 금융체계는 이기주의와 탐욕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부유한 국가는 빈곤국에 대해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며 “개혁의 방향은 재정 금융정책이 약소국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고 세계의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피터 터크슨 추기경은 “은행은 인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청이 세계 경제체제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기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9년 경제 회칙(回勅·교황이 모든 성직자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윤만을 모든 것으로 여기는 사고(思考)가 국제 금융질서를 파괴한다’고 경고한 후 2년 만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한편 텔레그래프는 교황청이 금융 투명성에서는 모범이 아니라며 지난해 이탈리아 당국이 돈세탁 혐의로 ‘바티칸 은행’의 자산 2300만 유로(약 361억 원)를 동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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