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포스트 카다피’ 시대]“경적을 울려라, 우리가 지구촌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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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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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특파원 리비아 트리폴리를 가다

환희의 리비아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해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숨진 지 하루가 지난 21일 수도 트리폴리에서 금요예배를 마친 여성들이 순교자광장에 모여 카다피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고 있다. 카다피의 시신은 현재 미스라타에 있는 시장의 한 오래된 정육점 냉장설비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로이터 연합뉴스
환희의 리비아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해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숨진 지 하루가 지난 21일 수도 트리폴리에서 금요예배를 마친 여성들이 순교자광장에 모여 카다피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고 있다. 카다피의 시신은 현재 미스라타에 있는 시장의 한 오래된 정육점 냉장설비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로이터 연합뉴스
흥분과 감격, 기대와 희망.

21일 오후(현지 시간) 리비아 트리폴리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수십 년 동안 철권통치에 짓눌려 살았던 사람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얼굴에선 사소한 두려움과 비관도 찾을 수가 없었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해 온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가 지났지만 트리폴리의 흥분은 아직 식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사방에서 자동차 경적과 하늘을 향해 쏘는 총소리가 들렸다. 내일(22일)은 리비아 시민군 대표인 과도국가위원회(NTC)가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언하는 날이다. 세기의 축제를 앞둔 트리폴리 시민들은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주인공이 자신들임을 의식한 듯 기쁨에 취해 있다.

그런 환희와 더불어 리비아에서는 이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될 재건사업과 원유 개발권을 둘러싼 ‘제2의 전쟁’이 본격 시작됐다.

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리비아-튀니지 국경도시 라스아즈디르를 통과해 차를 타고 트리폴리로 오는 2시간 반 내내 두려움의 공포에서 해방된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자위르 씨는 “어젯밤은 우리처럼 주민이 적은 마을에서도 경적을 울리고 기뻐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내전을 피해 왔던 리비아인 두 가족이 다시 트리폴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리비아 국경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입국 비자를 기다리는 언론인만 100명이 넘었다. 8월 말 동아일보 기자가 리비아에 입국할 때는 비자 없이도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행정의 틀이 갖춰지면서 비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트리폴리에 앞서 내전 도중 카다피군과 시민군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도시 중 하나인 자위야에 들렀다. 건물 곳곳에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주민들은 트리폴리를 향하는 차량들에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 군인은 택시를 타고 가던 기자에게 “카다피가 죽고 기자들이 트리폴리로 취재하러 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민군 출신의 사이드 씨(22)는 “어제는 정말 대단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새벽까지 경적과 총소리가 그칠 줄 몰랐고 사방에서 새 정부의 국기가 펄럭였다”고 말했다.  
▼ “전리품 선점” 글로벌 錢爭… 반군 지원한 佛-英 가장 유리 ▼

○ 리비아는 지금 ‘석기시대’

폐허가 된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가 은신해 있던 리비아 수르트의 거리. 카다피 사망 다음 날인 21일 촬영된 사진이다. 카다피가 정확히 이 지역의 어느 건물에 숨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폭격과 달포 이상 이어진 양
측의 치열한 전투로 거의 모든 건물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수르트=로이터 연합뉴스
폐허가 된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가 은신해 있던 리비아 수르트의 거리. 카다피 사망 다음 날인 21일 촬영된 사진이다. 카다피가 정확히 이 지역의 어느 건물에 숨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폭격과 달포 이상 이어진 양 측의 치열한 전투로 거의 모든 건물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수르트=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벌써부터 카다피와 측근의 동결자산 해제 및 자금 지원 의사를 경쟁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공습을 주도해 카다피 몰락의 ‘일등 공신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은 유리한 위치에서 전리품 지분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 사망 이틀 전인 18일 리비아를 전격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리비아 상황을 ‘석기시대(stone age)’로 묘사했다. 도로 전기 수도 등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완전히 망가졌음을 지적한 것이다.

리비아 재건사업 규모에 대해 KOTRA는 21일 기본적인 인프라 건설공사에만 최소 1200억 달러(약 137조 원)가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나마 보수적으로 잡은 금액이지만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1172조 원)의 10%가 넘는다.

재건사업에 투입될 자금은 △국제사회가 동결한 카다피와 전 측근의 해외자산 △국제기구 및 개별국가의 지원 △리비아 원유탐사권 판매 등 세 가지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독일 DPA통신은 이날 NTC 측의 주장을 인용해 해외 동결자산이 800억∼1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당장 투입이 가능한 카다피의 해외 동결자산 해제를 놓고 기선잡기에 나섰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리비아 지원에 나서는 것은 재건사업 참여에 우선권을 따겠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이와 함께 세계 8위의 원유매장량과 하루 원유생산량 155만 배럴(세계 수요의 2%)에 이르는 리비아의 ‘오일 파워’ 때문이다. 리비아에는 이탈리아의 에니, 프랑스의 토탈, 영국의 BP사 등이 현지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어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의 각축장으로 불린다.

NTC 측은 석유탐사권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해 각국 석유개발업체와 계약을 다시 하겠다고 밝혀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누리 베루인 리비아 국영석유공사 대표는 20일 카다피 사망으로 원유 생산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밝혀 세계 열강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 희비 교차하는 열강

주요 외신과 경제전문가들은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각국이 기여한 정도에 따라 전후 복구사업과 석유사업 개발권이 분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국가는 나토를 통해 반군의 군사작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각각 2억 유로와 2억5000만 파운드를 쏟아 부은 프랑스와 영국이다. 프랑스는 반군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 대가로 리비아 생산 원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따른 부담감으로 리비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 미국은 유엔과 국제기구를 통해 리비아 지원을 주도해 ‘제 몫 챙기기’에 나설 것으로 국제사회는 내다보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지지 없이는 국제기구들이 일사불란하게 리비아 지원에 나서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시민혁명과 카다피 타도에 소극적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뒤늦게 지분 챙기기에 부심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리비아 반군을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은 지난달 1일 파리에서 세계 60개국 정부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리비아의 친구들’ 회의에 슬그머니 특사를 파견하는 등 뒤늦게 구애 작전에 나섰다. 이는 8월 중순 반군 측 석유회사인 아고코의 압둘 잘릴 마유프 대변인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는 별 문제가 없지만 중국 러시아 브라질과는 정치적 이슈가 남아 있다”고 밝힌 영향이 컸다.

중국은 민주화 바람이 중국 대륙으로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카다피의 몰락을 대놓고 환영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 정부는 시민혁명 성공을 부각하는 논평을 한 건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도 카다피 정권 시절에 맺은 경제협력을 비롯한 각종 투자 계약이 파기되지 않도록 새 지도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트리폴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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