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버림받는 신생아 없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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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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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일리노이를 바꾼 주부 게라스 씨의 10년 집념

미국 일리노이 주 ‘유기아동 보호재단’을 운영하는 던 게라스 씨가 주정부에 맡겨진 유기아동 라일리를 안고 있다. 라일리는 게라스 씨가 발의한 유기 신생아 보호법의 혜택을 받아 좋은 가정에 입양됐다. 미국 WBEZ 홈페이지
미국 일리노이 주 ‘유기아동 보호재단’을 운영하는 던 게라스 씨가 주정부에 맡겨진 유기아동 라일리를 안고 있다. 라일리는 게라스 씨가 발의한 유기 신생아 보호법의 혜택을 받아 좋은 가정에 입양됐다. 미국 WBEZ 홈페이지
9월 25일 미국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 시에서 한 30대 여성이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공중화장실에서 아기를 출산한 뒤 홀로 도망치던 중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이 사건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신생아 유기는 미국 대도시에서 걸핏하면 발생하는데 왜 미국 사회가 유독 이번 일에 주목하는 걸까.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일리노이 주에선 신생아 유기가 지난 1년여간 아예 없었기 때문”이라며 “일리노이가 신생아 유기가 거의 사라진 지역이 되기까지는 한 평범한 여성의 10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시카고 시에 사는 던 게라스 씨는 11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발견한 조그만 기사 하나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앨라배마의 10대 소녀가 출산 직후 버린 신생아가 목숨이 위태롭다는 기사였다. 친구들과 자선모임을 꾸리고 있던 게라스 씨는 곧바로 이 아기를 돕는 기금 모금에 나섰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서 버려지는 신생아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시 신생아 유기는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흔한 사건이었어요. 길거리와 공중화장실, 심지어 환경미화원이 쓰레기통에서 아기를 발견하기도 했죠. 그렇게 버려지는 애들은 사망률도 높았습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몇 달간의 조사 끝에 게라스 씨는 유기 신생아 관리 시스템이 문제란 걸 발견했다. 당시 일리노이 주법은 10대 출산이 아니면 주정부에서 아기를 맡아주지 않았다. 10대라 해도 아기를 위탁시설에 맡기려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게라스 씨는 “신생아를 유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산모가 자신의 출산을 숨기고 싶은 심리”라며 “주위 시선과 복잡한 절차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면 아기들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주정부와 경찰, 시민단체를 돌며 법개정 운동에 나섰다. 처음에는 대다수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명했다. ‘아기를 버리는 부모에게 면죄부를 쥐여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게라스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책임을 따지기 전에 아기를 살리는 게 먼저다. 사건이 일어나면 당신들 집 앞에 아기의 관을 짜 갖다놓겠다”며 밀어붙였다.

결국 1년여의 노력 끝에 일리노이 주는 2001년 ‘유기 신생아 보호법’을 신설했다. 주 산하 경찰서와 소방서, 병원은 30세 이하 여성이 생후 60일 이전 아기를 맡기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야 한다. 산모의 신원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아기의 미래를 위해 위탁기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추가 조치도 마련했다.

게라스 씨는 한발 더 나아갔다. ‘유기아동 보호재단’을 창설해 주정부가 맡은 유기아동들을 돌보고 입양된 아이가 잘 크는지도 지속적으로 점검했다. 켄들 말로위 주 아동국 대변인은 “우리 주에서 10년간 발생한 신생아 유기 사건은 63건으로 미국에서 가장 적다”며 “한 시민의 작은 관심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라스 씨는 “아직도 멀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63건만 발생한 게 아니라 63건이나 일어난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63명 중 30명의 아기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았다면 예쁘게 자라났을 생명들이 말이죠. 결국 이렇게 1년 만에 버려진 아기가 또 나왔고요. 일리노이만이 아니라 전국이 유기 신생아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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