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오프라 윈프리 마지막 멘트 “오늘이 끝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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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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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4561회 이어온 토크쇼 마침표“난 시청자 대리인” 집요한 질문 특기… 성폭행 경험까지 털어놓으며 공감 끌어내

24일 미국 시카고 하포스튜디오. 여느 때와 달리 무대 위에는 의자가 한 개만 준비돼 있었다. 이날 ‘오프라 윈프리 쇼’의 진행자이자 마지막 초대 손님은 오프라 윈프리(57)였다. 방송 내내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가던 그녀는 “오늘 방송은 ‘안녕’이 아니에요. ‘다시 만날 때까지’입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최종회(현지 시간 25일 방영) 녹화를 마쳤다. 25년간 4561회 방송된 ‘오프라 윈프리 쇼’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윈프리가 1986년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시작했을 때 그녀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은 없었다. 윈프리의 이미지는 당시 이상적이라고 여겨졌던 토크쇼 진행자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뚱뚱했다. 게다가 흑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지구촌에 ‘윈프리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대신 ‘윈프리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를 연구한다. 그만큼 윈프리는 이 시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상징이다.

① “솔직함으로 무장하라”

윈프리는 1978년 요리사를 인터뷰하던 도중 고기의 상태를 재는 온도계를 들고 이렇게 물었다. “이게 뭔가요?” 제작진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는 방청객을 향해 집요하게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이거 본 적 있어요? 모든 주방에 하나씩 갖다 놔야겠군요.”

한 인터뷰에서 윈프리는 무명 때부터 지켜온 자신만의 방송 원칙이 있다며 △모르는 게 있다면 인정하자 △나는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이웃들의 대리인이다 △우습게 들려도 당황스러운 질문을 하자(시청자도 같은 질문을 할 테니 기회는 그곳에 있다) 등을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릴 적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부터 다이어트 고민까지 가감 없이 자신의 치부를 털어놓는 공개 참회를 일컬어 ‘오프라피케이션(Oprahfication·오프라되기)’이라 명명했다. 시사주간지 타임도 있는 일에 대해 얘기하는 ‘리포트 토크(report talk)’와 구별되는 ‘래포 토크(rapport talk·공감대화)’를 윈프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대중문화 현상으로 평가했다. 이런 솔직함은 초대 손님까지 무장해제시켰다. 배우 톰 크루즈는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소파에서 방방 뛰었고 영국 닉 클레그 부총리는 “때때로 나도 운다”고 털어놓았다.

② “너 자신을 대접해라”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낸시 코엘 교수는 “윈프리보다 더 강력한 브랜드를 생각해내려 지난 200년간의 브랜드 역사를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윈프리 리스트’를 만들어 추천한 상품은 금세 히트를 쳤고 추천하는 책은 다음 날 베스트셀러가 됐다. 마케터로서 그녀의 역량은 탁월했다. ‘오프라 윈프리 브랜드는 빵부터 냉장고까지 모든 걸 팔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마케팅 전문가인 리사 아서 씨는 △진실성 △단순화 △일관성 △통합채널전략 등을 ‘마케터 윈프리’에게서 배울 점으로 꼽았다.

특히 메시지를 통해 소비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윈프리만의 강점이다. ‘너 자신을 대접해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라는 그녀의 외침에 시청자들은 지갑을 열었고 씀씀이도 커졌다. 윈프리 또한 통 큰 선물로 보답했다. 방청객 276명에게 GM 자동차를 선물했고 2009년 전 스태프와 방청객을 이끌고 호주 시드니로 여행을 간 적도 있다.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통 큰 마케팅으로 영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워갔다”고 분석했다.

③ “시청자의 마음, 생각, 생활을 움직여라”

마돈나에게 윈프리는 ‘살아있는 유일한 여성 역할모델’이다. 배우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도 윈프리를 ‘신’이라 표현한다. 일반인에게도 윈프리는 ‘동기 부여자’를 비롯해 선생님 지도자 후원자 멘터 어머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쇼의 목적은 단순히 시청자를 즐겁게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개조하는 것이다”라는 윈프리의 철학은 시청자들에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었고 마음과 생각, 생활을 움직였다.

“너에겐 항상 힘이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착한 마녀 글린다가 도로시에게 하는 말을 윈프리는 금과옥조로 여기며 수차례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토크쇼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하던 그녀는 2007년 자기 치유 프로그램인 ‘더 시크릿’을 시작했다. “신은 느끼는 것이지 믿는 게 아니다”라는 발언에 종교계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영적 지도자’로서 그녀의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2002년 미 개신교 잡지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는 ‘O(오프라)의 교회’라는 기사를 통해 윈프리가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가 됐다고 분석했다. 교회도 없이 2000만 명의 여성 시청자들을 신도로 끌어들인 ‘포스트모던한 목사’라는 수식도 따라붙는다.

1986년 9월 8일 처음 방송된 ‘오프라 윈프리쇼’는 25개 시즌에 3만 여 명의 초대 손님이 다녀갔고 전 세계 105개국에서 방영됐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녀의 개인 순자산만 27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 그녀는 여성 흑인 미국인 중에서 유일한 억만 장자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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