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진 후]후쿠시마 원전 냉각 총력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7일 14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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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한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의 냉각장치 복구 작업이 일부 진전을 보이는가 하더니 각종 문제점을 노출하는 등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앞으로 사태는 호전되는 것일까, 아니면 악화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것"

후쿠시마 제1원전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는 냉각장치를 돌리는 전원이 모두 끊겼기 때문이다. 규모 9.0의 강진 직후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쓰나미가 밀어닥치면서 외부 전원과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모두 끊기거나 고장 났고, 냉각시스템이 고장 났다.

가동 중인 원자로는 계속 냉각하지 않으면 연료봉이 가열돼 주변의 냉각수를 증발시킨 뒤 공기 중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연료봉이 1200~1800℃로 가열되면 우라늄을 싼 금속성 피폭재가 녹을 위험도 있다. 사용 후 연료봉을 보관해둔 저장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사태 악화를 막는 방법은 원자로에 전력을 다시 공급하고, 원전을 운전, 감시하는 '두뇌' 격인 주제어실(MCR) 기능을 회복한 뒤 냉각장치를 다시 돌리는 것이다.

소방펌프를 이용해 원자로 노심에 바닷물을 집어넣거나 소방대, 자위대가 원자로 외부에서 물을 뿌리는 것은 임시 조치일 뿐이다.

도쿄전력은 19~21일 외부 전력에서 전선을 끌어와 원자로에 연결했고, 21일부터 일반 가정의 '차단기'에 해당하는 원자로 배전반에 전기를 흘려보냈고, 22일 오후 10시43분경에는 가장 먼저 3호기 주제어실의 조명을 켰다. 이후 1호기, 2호기 주제어실에도 불이 들어왔다.

주제어실 일부 기능을 복구하고 나서는 험한 난관이 잇따라 출현했다.

우선 1호기 압력용기 바깥쪽 온도가 약 400℃(23일 오전 0시)로 올라간 사실을 알게 됐다. 설계온도(302℃)를 100℃ 가까이 뛰어넘는 고온이었다. 원자로를 싼 20㎝ 정도 두께의 탄소강 소재 압력용기가 이 정도로 뜨거워졌다는 것은 자칫하면 연료봉이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신호로 해석됐고, 급하게 소방펌프를 이용해 원자로 노심에 바닷물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압력용기 온도는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압력용기를 둘러싼 격납용기의 압력이 치솟았고, 이 위기는 원자로에 넣는 물의 양을 줄여 해결했다.

24일에는 3호기 터빈실에서 전선을 깔던 근로자들이 방사선에 노출돼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터빈실 지하 1층에 고여 있던 물에 발을 담근 게 문제였는데, 이 물에서는 정상운전 시 원자로 노심의 물보다 농도가 1만 배나 높은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이후 1, 2호기 터빈실에서도 비슷한 물웅덩이가 발견됐다. 이는 1~3호기 원자로에 있는 연료봉이 일부 손상돼 방사성 물질이 다량으로 새어나왔고, 이후 이 물질이 포함된 물이 지진으로 손상된 배관을 통해 터빈실에 흘러 넘친 것으로 분석됐다.

연료봉이 일부 훼손됐으리라는 점은 사실 사태 초기에 피복재가 일부 녹았다는 걸 의미하는 수소폭발이 일어났을 때부터 예상된 것이나 마찬가지고, 문제는 이를 둘러싼 압력용기와 격납용기의 이중 안전장치가 무사하냐는 점이다.

하지만 용기의 안쪽과 바깥쪽이 온도나 압력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압력용기나 격납용기는 아직 무사한 것으로 추측됐다. 일본측은 '고(高)방사능 물 웅덩이'가 생긴 원인은 일부 손상된 밸브 등을 통해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물이 흘러 넘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고, 뒤집어 보면 주제어실이나 각종 계측기기가 일부 복구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원자로 내부의 상태가 조금씩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토대 원자로 실험소의 우네사키 히로노부(宇根崎博信) 원자력 기초공학 교수는 "전원 회복으로 계측기기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고장 난 곳을 알 수 있게 되면 수리할 곳이 어딘지도 확실해진다"고 강조했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 냉각 기능 복구에는 시간 더 필요

전력을 공급한 뒤 주제어실 조명을 다시 켜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것처럼 앞으로 냉각시스템을 돌리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장치와 모터의 결합체인 각종 냉각시스템이 지진과 쓰나미로 적지 않게 훼손됐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부서졌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전기를 다시 공급하고, 주제어실 조명을 켬으로써 최소한 이를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냉각시스템을 복구하는데 수일간 더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방사선량 수치가 높은 상황에서 돌릴 수 있는 펌프를 찾아서 냉각을 시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3호기에선 급한 대로 급수 펌프(한국에선 '보충수 펌프')를 찾아내 조만간 돌릴 수 있을 전망이다. 이 펌프는 평상시라면 원자로 안에 물이 부족할 때 미리 급수 탱크에 모아둔 물을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급한 대로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원자로나 사용 후 연료 저장조에 바닷물을 주입하던 것을 민물로 차츰 바꾸고 있다는 것도 호신호다. 바닷물은 증발하고 나면 남은 소금기가 연료봉에 들러붙어 냉각을 막을 수 있지만 민물은 그럴 염려가 없다.

냉각 펌프를 돌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냉각수도 시간이 지나면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

이 열을 다시 필수냉각계통(ESW)을 통해 바닷물 쪽으로 옮긴 뒤 이를 바다에 배출하는 구조를 완성해야 원자로가 안정된다.

필수냉각계통은 원자로 냉각 펌프보다 더 심하게 손상됐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고치는 데에도 일주일 이상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국내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규슈대학의 구도 가즈히코(工藤和彦) 특임교수(원자력공학)는 사용 후 연료 저장조가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수증기를 방출하는 것을 막으려면 콘크리트나 강철제 지붕을 덮어 밀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산케이신문이 전했다. 앞으로 1~2주간 진짜 승부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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