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위사태가 엿새째 계속됨에 따라 한국 교민들과 주재원들은 서둘러 이집트를 떠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30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아프리카 지역본부를 일단 폐쇄했다. 주재원 13명은 중동지역 본부가 있는 두바이로, 가족 36명은 모두 한국으로 귀국하도록 지시했다. LG전자 현지 법인은 주재원 가족 30명의 귀국을 돕기로 했다. 삼성전자 지사도 가족들을 공항 근처 호텔에 묵게 한 뒤 다음 달 1일경 한국행 비행기에 태운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이집트로 관광이나 성지 순례를 온 한국인 관광객들도 서둘러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이집트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 61명은 조만간 귀국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한국인들의 비상대피 계획을 수립하고 이집트 전역을 ‘여행자제’(여행경보 2단계) 지역으로 지정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30일 “일주일에 세 차례 운항하는 카이로행 항공편(대한항공)이 현지 시간으로 밤에 도착하는 만큼 항공사에 탑승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지 기관과 상점들도 긴장에 휩싸였다. 정부는 학생 40명 규모의 현지 한국학교(초등과정)를 30일부터 일주일간 휴교하도록 했다. 이집트 정부가 오후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통행금지를 내린 만큼 한인 상점과 식당도 낮에만 영업하도록 했다. 이집트에는 카이로를 중심으로 LG전자와 동일방직의 현지공장 직원, 교민을 비롯해 관광객 등 모두 1000명 정도의 한국인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치안 공백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한인 상점과 식당이 밀집된 카이로 근교 마디 지역에서 한국인의 피해가 있다는 보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김준모 KOICA 카이로사무소 부소장은 “한국인들은 집에 머물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집트 현지 한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KOTRA에 따르면 이집트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교민 기업은 모두 24곳. 이들 기업은 근무시간을 조정하고 출퇴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재택근무에 나서기도 했다. 또 통행금지 시간이 확대되고, 인터넷 등 통신수단이 두절돼 업무 연락도 휴대전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시위대가 카이로 등에서 관공서, 상점 등을 약탈하자 현지에 공장과 물류창고 등을 가진 업체들은 사설 경비원을 고용해 경비를 강화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소비재 취급 기업들은 상점 폐쇄,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건설과 플랜트 등의 분야에서도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정치 상황이 시장에 악영향을 미쳐 앞으로 판매 실적에 차질이 예상된다”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현지 파트너 업체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해 구형 베르나를 생산하고 있다.
이집트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현지 바이어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상적으로 수출을 추진할 수 없고, 이미 계약한 기업들도 제품을 선적해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기업들은 전했다.
김용석 KOTRA 중아CIS팀장은 “우리 교민이 많은 카이로 근교 마디 지역에는 경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안 상황이 좋지 않다”며 “현지 무역관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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