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고’ 기후변화 현장을 가다]<3>강물 급감… 신음하는 메콩강,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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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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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바닷물 습격까지… ‘동남아 젖줄’이 말라붙는다
江수위 낮아지고 해수면 상승…밀물 땐 바닷물 몰려들어와 옥토가 불모의 소금땅으로
해수면이 75cm 올라가면 삼각주 곡창지대 19% 사라져…상류댐 건설로 생태계도 흔들

《메콩 강은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해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에 걸쳐 4020km를 흐르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강이다. 수천 년을 도도하게 흘러왔던 이 강이 요즘 심상치 않다. 일부 지류에서는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났다. 강물이 줄면서 밀물 때 짠 바닷물이 내륙까지 들어와 농사를 망치는 곳도 많다. 지난달 26일 메콩 강 삼각주의 9대 지류중 하나인 ‘미토 강’을 취재하기 위해 베트남 호찌민 시에서 차로 세 시간 떨어진 미토 시를 찾았다. 메콩 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주민들은 최근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옥토가 염전으로 변하고 반복되는 가뭄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바뀔지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 강물 줄고 바닷물은 넘쳐


메콩 강 유역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변화는 강물의 양이다. 메콩 강은 전통적으로 건기와 우기에 유량이 변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현지에서 기자를 안내해준 응우옌판타오 씨(32·호찌민국립대 강사)는 “메콩 강 수위는 낮아지고 해수면은 상승해 메콩 강 삼각주의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콩 강 삼각주는 저지대여서 해수면이 높아지면 바닷물이 쉽게 유입된다. 그동안 상류에서 힘차게 내려오던 강물이 마치 제방처럼 바닷물을 막아줬다. 그러나 최근 강물이 줄면서 바닷물의 유입에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범지구 차원의 해수면 상승은 메콩 강 유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다. 베트남 자원환경부 관계자는 “강물이 줄어 밀물에 강 안쪽으로 들어왔던 바닷물이 썰물 때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점차 해수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메콩 강은 인근 주민 6000만 명의 삶의 터전이자 다양한 생물을 키워내는 인도차이나의 젖줄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메콩 강은 몸살을 앓고 있다. 가뭄과 댐 건설 등으로 수량이 줄면서 해수가 넘나들어 비옥한 메콩 강 삼각주를 황폐하게 하고 있다.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메콩 강(왼쪽) 모습과 바닷물로 폐허가 된 지역이 대조적이다. 사진 제공 세계자연보호기금(WWF)
메콩 강은 인근 주민 6000만 명의 삶의 터전이자 다양한 생물을 키워내는 인도차이나의 젖줄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메콩 강은 몸살을 앓고 있다. 가뭄과 댐 건설 등으로 수량이 줄면서 해수가 넘나들어 비옥한 메콩 강 삼각주를 황폐하게 하고 있다.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메콩 강(왼쪽) 모습과 바닷물로 폐허가 된 지역이 대조적이다. 사진 제공 세계자연보호기금(WWF)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베트남의 경제 중심이자 곡창지대인 호찌민 시 주변 지역은 바다에 잠기게 된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2100년에는 메콩 강 삼각주 지역의 해수면이 대략 65cm∼1m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수면이 65cm 상승하면 메콩 강 삼각주의 13%인 5130km²가 바다에 잠긴다. 75cm와 1m로 올라가면 각각 19%(7580km²), 38%(1만5100km²)의 땅이 사라진다.

○ 흔들리는 메콩 강의 생태계

메콩 강 유역은 1997년부터 10년간 1000종 이상의 새로운 생물종이 발견됐을 정도로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꼽혀왔다. 그런데 메콩 강의 수량 감소는 이곳에 사는 생물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단순히 물의 양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을 비롯해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5개국이 강 유역에서 물을 지키기 위해 건설한 중대형 댐들이 2차 피해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메콩 강 프로그램’ 베트남 지부 매니저 러스 매슈스 씨는 “댐이 잇따라 건설되면서 강돌고래 등 메콩 강에 사는 동물들이 상·하류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등으로 인한 메콩 강 유역의 삼림파괴도 진행되고 있다. WWF에 따르면 메콩 강 유역의 숲지대가 1970년대 초반 55%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34%로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자원환경부 생물보전국 마이탄하 씨는 “메콩 강 유역 국가들이 ‘메콩 강 위원회(Mekong River Commission)’를 구성해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댐을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메콩 강 지역주민의 생계도 위협


이 지역의 기후변화는 메콩 강 유역의 농업과 어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베트남 정부는 해수 유입이 잦은 지역의 주민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한편 염분이 많아 벼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을 새우양식장 등으로 바꾸고 있다. 상습 가뭄지역으로 변한 곳은 옥수수를 재배하도록 권고했다. 메콩 강에 해수가 밀려오고 물고기의 이동이 끊기자 메콩 강 유역 주민들의 주된 수입원인 수산자원도 크게 줄었다.

12년째 메콩 강에서 어업활동을 하고 있는 응우옌반남 씨는 “먹(오징어류), 까호이(연어류), 까응(다랑어류) 등이 메콩 강과 인근 해역에서 주로 잡히는데 요즘은 바다와 강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어획량이 줄었다”고 전했다. 메콩 강 유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6000만여 명의 생계도 기후변화에 따라 크게 위협받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가목표 프로그램’을 세워 온실가스 저감대책과 생태계 보전계획을 추진 중이다. 응우옌티엔땀 베트남 자원환경부 국장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환경전문가 양성 과정을 만드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대처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세계 각국 정부를 비롯해 베트남에 투자하는 기업, 비정부기구(NGO)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여름보다 더운 봄·가을… 태풍도 더 사나워져
■ 온난화 몸살 앓는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은 최근 3년간의 태풍을 또렷이 기억한다. 하노이대 학생인 도티투 씨(22)는 “베트남 북부는 태풍이 약한 지역이지만 대학에 입학한 최근 2, 3년간 강한 태풍을 겪었다”고 말했다.

올해 정도(定都) 1000년을 맞는 하노이 시는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홍 강을 통해 바다로 내보내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대개 베트남 중부까지 올라오는 데 그쳤던 태풍이 요즘엔 더 위로 북상해 엄청난 비를 쏟아내고 있다. 전통적인 하수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하노이 시는 최근 몇 년간 전역이 물에 잠기는 사태를 겪었다. 남부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태풍의 기습에 농작물의 피해가 컸다. 응우옌티엔땀 베트남 자원환경부 국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홍수와 가뭄 등 기존엔 보지 못했던 재해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온 상승도 두드러진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베트남의 평균기온은 섭씨 0.5도 상승했다. 베트남 중부 출신의 회사원 응우옌뚜안안 씨는 “겨울이 10일 이내로 짧아졌으며 봄가을에도 여름보다 기온이 높은 날이 나타나는 등 온난화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후변화로 인해 땅이 뜨거워지면서 가뭄지역이 많아졌다. 우기에 비가 오더라도 폭우 형태로 오기 때문에 땅속에 저장되지 않고 홍수로 돌변해 피해를 준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베문화교류센터 심상준 박사(57·인류학)는 “베트남 북부에서는 초봄 이슬비가 봄농사에 도움을 줬지만 최근 수년간 내리지 않고 있다”며 “북부 일부 지역에서는 이 때문에 삼모작이 아니라 이모작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온실가스가 메콩강 재앙의 주범… 국제적 대응 필요”▼
■ 호찌민국립대 쩨딘리 교수

“홍수, 가뭄, 태풍, 해수 침입, 강의 유량 감소 등 베트남이 몇 년 전부터 겪고 있는 모든 일이 기후변화와 관련돼 있습니다.”

쩨딘리 호찌민국립대 환경자원연구소 교수(56·사진)는 베트남이 앓고 있는 재해의 근본 원인으로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를 꼽았다. 수천 년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베트남이 최근 겪은 대재앙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해수가 유입돼 염전처럼 바뀐 지역의 주민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거나 생물종의 이동 경로를 확보해주는 것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전부다. 쩨딘리 교수는 “벼를 재배하던 곳의 염분 농도가 올라가면 양식장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은 임시방편일 뿐 잦아지는 강한 태풍, 가뭄, 해수 유입 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메콩 강 황폐화에 세계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지구온난화와 메콩 강의 변화에 베트남인뿐 아니라 세계인 모두의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6월 5일 베트남 메콩 강 유역의 대표적 도시인 깐토에서 열리는 ‘메콩강위원회’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당사국 사람들과 환경학자, 비정부기구(NGO) 등이 모여 대책을 마련한다.

“지구온난화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콩 강 삼각주로 와서 보시기 바랍니다. 직접 체험하고 고민하고 우리와 토론하면 생각이 바뀔 것입니다.”
하노이·호찌민·미토=김규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yout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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