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패션 1번지’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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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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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店’ 연내 폐쇄 결정
“소비패턴 변화 못읽어”… 백화점 업계 충격

26일 폐점이 결정된 일본 도쿄 긴자의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 정문 앞이 한산하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26일 폐점이 결정된 일본 도쿄 긴자의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 정문 앞이 한산하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그렇게 잘나가던 ‘세이부(西武) 유라쿠초(有樂町)’마저 문을 닫을 정도라니 놀랐어요.”(50대 중년 여성)

“친구들과 종종 이곳에서 만나지만 쇼핑은 딴 데서 해요.”(20대 여성)

27일 오후 1시 도쿄 긴자(銀座)의 어귀에 위치한 유라쿠초.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의 폐점 소식을 들은 도쿄시민들은 ‘80년대 패션 1번지’가 사라진다는 충격과 함께 소비 행태의 변화를 읽지 못한 당연한 결과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 소비 변화 읽지 못한 ‘세이부 유라쿠초’

일본의 대표 유통업체 ‘세븐&아이홀딩스’는 26일 세이부 유라쿠초점을 연내에 폐점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일본의 지방 백화점이 문을 닫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도쿄 한복판의 백화점이 문을 닫는 것은 처음. 세이부 유라쿠초점은 일본경제가 초호황을 누리던 1984년 개장해 줄곧 도쿄의 패션을 대표해왔다. 고가의 고품질 패션의류와 액세서리 점포가 대거 입점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2000년대 중반 들어 매출이 해마다 전년 대비 5∼10%씩 감소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매출액이 162억 엔으로 최전성기였던 1992년(270억 엔)의 60% 수준으로 떨어진 것.

일각에서는 세이부 유라쿠초점의 영업 중단을 최근 소비 패턴의 변화를 읽지 못한 구태의연한 백화점 운영방식에서 찾기도 한다.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이 철저하게 저가 지향으로 돌아선 데 반해 땅값 비싼 노른자위에 위치한 백화점은 고가 고급품 위주의 상품진열로 소비자들의 변한 욕구를 외면해왔다는 지적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유니클로, H&M처럼 최신 유행제품이면서도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이른바 ‘패스트 패션’ 소비가 붐을 이루고 있다. 또 루이뷔통 구치 등 고급 브랜드는 백화점 입점보다 자체 전문매장으로 독립하는 추세다.

○ 일본 백화점의 몰락으로 이어지나

세이부 유라쿠초점의 폐점을 보는 일본 백화점업계의 심정은 착잡하다. 가격경쟁력도, 유명 브랜드도 아닌 어정쩡한 영업을 하는 백화점들의 경우 설 땅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전국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6조5842억 엔으로 전년 대비 10.8% 감소해 20여 년 전으로 후퇴한 상태다. 일본 백화점의 90%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을 닫는 백화점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3∼5월 미쓰코시백화점이 도쿄의 이케부쿠로(池袋)점 등 4개 점포를 잇달아 폐쇄했고 9월에는 세이부백화점 삿포로점이 문을 닫는 등 8개점이 폐점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이세탄백화점 기치조지점(도쿄)과 다이와백화점의 지방 4개 점포 등 7개 점포가 영업을 중단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문을 닫는 백화점이 역대 최다였던 2000년(11개)을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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